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이 전시는 아트스페이스3이 외부 기획자를 초청하는 기획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다.
최근 다시 부각되고 있는 추상미술 작업들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구체적인 현실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순수한 조형요소들을 통해서 그들이 감지한 비가시적인 세계를 탐구한다.
이 전시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작가군으로 구성되는 추상미술 전시가 9월에도 열릴 예정이다.


부대행사 : 작가와의 대화
일시 : 2019. 6. 15(토) 04:00pm-06:00pm
참여자 : 김겨울, 박성소영, 배헤윰, 이민정, 황수연
장소 : 아트스페이스3
당신에게

이른 점심을 하고 조금의 여유가 생겨서 커피를 시켜놓고 멍하게 앉아 있다 잠깐 웃었어. 당신과 나눌 대화의 시간을 기대해서 그런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네. 예전엔 참 자주 만났지. 수다를 떨다가 미지근해져 버린 커피를 입에 대며 즐거워했는데, 최근 몇 년간 소원했던 것 같아. 우리는 주로 사회와 문화전반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어. 15년이라는 그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나름 싫지는 않았나봐. 물론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끝말잇기 게임을 하듯이 밤을 샌 적도 많았지만 괜스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심증으로 우리의 대화는 점점 흥미로워 졌을때도 있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때가 나에게 흥미로운 나날이었던 것 같아.
근래에 들어서 나는 ‘말’로써 의미전달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어. 당신과의 대화에 자신감을 가진 걸까! 어쨌든 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렇지만 이런 일상이 나를 얼마나 공허하게 만드는지 당신은 잘 알거야. 우리는 항상 비슷한 일들을 경험하며 지내니 말이야.

맞아. 난 그제도 대상의 실체가 없는 말을 무수히 내뱉고 말았어. 그게 얼마나 상대방의 뇌를 마비시키는지 뻔히 아는데도 말이야. 실례로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 지나친 수사적 담론을 한다던지 아니면, 은유나 환유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보는 이의 주체와 대상은 어느 순간 우리의 현실 앞에서 형상을 슬며시 감춘다 말이지.
이런 나를 보며 당신은 매번 지적했지. 나도 잘 알아. 그런 식의 대화는 좋지 못한 습관이라는 것을, 하지만 왜 나는 항상 그렇게 말하는 걸까! 매번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구성해 가는 것에 문제를 인식하면서, 말의 습관은 왜 그대로일까! 대화의 기술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의 결핍일까! 어쩌면 우리의 대화에서 논쟁의 주제가 흐려지는 이유도 나의 이런 습관일 것이라 종종 생각했었어.

자아와 대상과의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치더라도, 설령 그 틈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해도, 나는 대상의 본질과 그 대상을 표현하는 자아를 옳게 표현하기엔 나의 능력으론 역부족 인가봐. 어쩌면 이 또한 이론적으론 알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언제나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어.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대상과 자아, 언어와 표현,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와 틈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난 불가능하다 생각했으니까. 난 이 문제를 당신과 이야기하며 해소하고 싶어. 지금까지 내 생각은 그저 의식과 표현의 틈에서 발생하는 끊이지 않은 긴장관계,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닐까! 하고 가끔 공상해 보고 있지만 말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오후의 기온은 이미 초여름을 지난 것처럼 덥고, 길 위의 사람들은 쉼 없이 흘러가고, 아직 냉방기를 틀기에 이른 감이 있고, 카페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다양하고, 이곳은 모든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숨 쉬는 행위를 걱정하지만, 감겨져 버린 눈은 현실 기억너머에 있지.

5월 18일, 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강석호)
그것들의 모양, 공기, 리듬

몇 년 전부터 추상작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부쩍 많아진 추상 작가들의 활약을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한편으로 나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추상을 향하게 된 탓일 것이다. 색과 면들과 얼룩들이 자리를 펼치고는 모양을 만들고 숨을 내쉬다가 빙글빙글 돌다가는 정지하는, 단순하지만 미지의 상태로 남아있어 자유로운 생각의 공간을 열어주는 추상적 이미지의 세계. 이에 대한 관심은 실체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지연시키는 언어의 과잉상태나 현실 사회의 날선 긴장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시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적 추이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 전시의 작가들은 2000년대 포스트민중미술 계보의 서술적 구상미술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상용화 이후 사진과 회화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등장했던 풍경화에서 나타난 현실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색, 면, 질감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들의 구성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0년대의 시대적 감수성을 장착하고, 집단문화나 거대담론에서 떠나 독립된 자신의 정서적 시공간을 확고히 하고 있는 그들에게 현실은 바깥이 아닌 내부의 문제가 된다. 그 현실은 공기의 결이나 리듬 같은 것을 포착하는 예민한 감각이나(김겨울), 손닿는 재료들을 만지작거리는 조형적 유희에 동반되는 사고의 과정(황수연), 색종이가 그림 속 색면이 되어 평면 안의 자율적 리듬을 부여받는 위상 전환(배헤윰), 초시간적 시공간을 물질화하는 붓질의 밀도(박성소영), 대상을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정중동의 감정적 균형점을 만들어내는 구성감각(이민정)을 통하여 시적 긴장을 획득한다.

이들 각자의 정서적 공간 속에서 변주된 그 세계는 무엇과 무엇 사이에 있기에, 일련의 물질적 형식을 동반한 시각적 기호로서 조형화 되었음에도 명료한 범주화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 세계에서는 끄적거림 같은 드로잉이 회화가 되고, 평면 조형이 3차원의 입체와 연결되거나 구상적 대상인 동시에 추상적 조형요소가 되기도 하며, 비정형의 상태가 정물이나 풍경의 인상을 갖게 되고, 사물이 곧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이 작가들은 규정하는 동시에 그 정의로부터 빠져나가곤 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물질화하기 위해서, 명료한 확실성보다 의도적인 모호함을 택하고 있다. 언어로 포섭될 수 없는 세계를 말하기 위해서는 지시될 수 없는 것을 지시하지 않을 자유를 남겨주는 시(詩)가 필요한 것이다.

대상 그 자체가 전하는 것에 기대지 않기에, 이들의 작업에서 선긋기의 속도나 색면의 면적, 물감의 점도나 색채관계가 갖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의 언어적 역할은 더 커진다. 이와 같은 시적 어법의 일종의 유행과도 같은 현상이 어떤 시대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감히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시각언어마저도 규범화시키는 틀에서 벗어나려는 태도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전시 작가들의 작업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허용하면서도 보는 이의 감각을 직접적으로 두드려 그들이 감지한 세계의 모양과 공기와 리듬을 느끼게 한다. 감각과 사고가 딱 붙어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보게 만드는 그 특성으로 인해, 이 작가들의 추상적 작업들은 사실적 정보보다 더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 있다.

(이은주)
Artist
김겨울, 박성소영, 배헤윰, 이민정, 황수연
전시기획
강석호, 이은주
title
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one seeing this also thinks that
date
2019. 6. 7 (Fri)- 7. 5 (Fri)
opening reception
2019. 6. 7 (Fri) / pm 6

Artist Infomation



김겨울은 뉴욕의 School of Visual Arts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18년 서울 영등포의 비영리전시공간인 위켄드(Weekend)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드로잉의 무게》(2018, 갤러리9P)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박성소영은 2009년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다니엘 리히터 교수의 마이스터슐러로 졸업 후,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 ESMoA 뮤지움(2016, 캘리포니아,미국) 등 독일과 미국에서 10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8년 서울의 합정지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배헤윰은 이화여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예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독일 바우하우스 대학교 연구프로그램의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2016, 서울)과 OCI 미술관(2017, 서울) 등에서 4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현재 금천예술공장의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민정은 계원조형예술대학교와 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6년 인사미술공간의 제2회 《인미공열전》에 참여했다. 신한갤러리(2012, 서울), 175갤러리(2016, 서울) 등에서 6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황수연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금호미술관(2017, 서울), 두산갤러리(2019, 서울) 등에서 4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제19회 《젊은 모색》전의 작가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