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문
글: 박주희
《내 안의 파편들이 살이 될 때》는 ‘고정되지 않고 개별 단위에서 발생하는 연약함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연약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상황과 내면의 경험이 만나는 틈에서 그 의미를 재구성하고, ‘다시-쓰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연약함을 향한 주장은 각자의 경험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여러 파편의 이야기일 수 있다. 참여 작가인 김도희, 문지영, 좌혜선은 ‘자기 서사’ 에 기반하여 자신만의 체계화된 언어를 구사하거나, 타자를 맞이하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1) 이들의 작업은 자기 자신을 거쳐 진실을 말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이들이 기록한 진실은 때때로 ‘오토픽션(autofiction)’ 의 특징이 엿보인다.2) 참여 작가는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확장하여 이를 통해 자아와 타자, 내면과 외부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는 너무 사적이라 이론이 될 수 없다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 서사를 이론 개입의 차원에서 사유하려는 시도들과 맞닿아 있다. 개개인의 감정 또한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시대에서 말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키기를 꺼리거나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재현의 자기모순 즉, 재현하는 행위가 수반하는 해석의 개입, 의미의 왜곡, 권력관계의 재생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과거처럼 정서적 유대 속에서 함께 성장하거나 서로를 지탱하던 관계의 구조는 경쟁 체제와 개인화된 사회 구조의 심화로 인해 점차 해체되었고 개인은 타자와 연대 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연약함과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자기 서사는 이러한 고립의 조건 속에서 자신을 살피는 하나의 태도가 될 수 있다. 우울과 불안, 증오가 사적인 것으로 격리된 시대는 개인의 내면에 복잡한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분열의 조건 속에서 자기 서사는 내면적 균열의 솔직한 고백이자,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실천이 된다. 작가는 종종 내면화된 정체성과 외부 환경의 충돌 속에서 다중으로 출몰하는 자기 이미지 사이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자기 서사는 복합성과 균열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수행적 실천이자 자신의 위치를 발화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또한 자기 서사는 타인을 ‘대변하지 않고 곁에서 말하기’ 위한 제스처로 작동한다. 이때 ‘나’가 견지한 연약함과 분열은 제거되어야 할 잔여가 아니라 다시 관계 맺기를 위한 가능성의 형태로 재건되며 전시 안에 출현한다. 전시 제목인 《내 안의 파편들이 살이 될 때》는 자기 서사의 개별 파편에서 출발해 이들의 작업에서 이러한 파편들이 몸과 살을 통과해 실재로써 형상화된다. 여기서 파편은 분절된 기억, 분열된 정체성, 해체된 감정의 조각들이며 이는 살 이라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실천을 통해 다시 엮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한다. 3)
1) ‘자기 서사’라는 용어는 이 글에서 로렌 푸르니에(Lauren Fournier)의 『자기이론: 자기의 삶으로 작업하기』(마티북스, 2025)에서 제시된 ‘자기 이론’(self-theory) 개념에 기대어 사용한다. 푸르니에는 자기 이론을 삶의 이야기와 이론적 사유가 맞닿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비평적 글쓰기이자, 자기 자신을 이론화하는 여성주의적 실천으로 정의하며 자기 서사를 단순한 자전적 고백이 아니라 이론으로의 개입과 정치적 수행의 방식으로 확장시킨다. 다시 말해, 자기 서사는 자기 경험은 이론적·사회적 맥락과 연결지어 사유하고 해체하는 하나의 실천이다.
2)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전통적인 자서전의 진실성 요구를 거부하고 허구적 전개를 통해 자아를 재구성하는 서사 방식
3)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정의에 따르면, '살'은 감각하는 자와 감각되는 자가 분리되지 않고 맞닿는 지점이며,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흐려지는 존재의 층위를 의미한다. ‘살’은 감각을 일으키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타자의 시선이나 접촉 속에 감각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성질은 존재를 일방적인 주체 또는 대상이 아닌 관계적 존재로 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