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수 도 山水陶

ARTIST
곽혜영, 이승희, 이 은, 이정석, 정만영
TITLE
산 수 도
山 水 陶
DATE
2021. 10. 1 (Fri) - 10. 16(Sat)
OPENING RE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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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도(山水陶)
생명을 잉태하는 흙 그리고 물이 있는 천지인(天地人)의 공간

천지인(天地人)의 공간_the Space of Heaven, Earth and Humans
본 전시는 전시 공간(갤러리)를 콘크리트로 만든 건축 공간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공간으로 재상정한다. ‘천지인’은 소우주이자 압축된 자연 세계다. 그 안에도 하늘(天)이 있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반드시 딛어야할 지지대인 땅(地)이 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은 화이트 큐브의 문법을 동양의 오랜 인식론적 사고로 다시 들여다보고 의문시하기 위함이다. 이 전시는 미술 작품을 현실로부터 고립시키고 미술관의 벽 혹은 전시대 위에 특별한 존재로 강조하는 서양의 연출문법이 우리 미술 그리고 공예를 들여다보는 전시 연출 문법으로 적합한지 의문한다. 공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습화된 시선, 모더니티의 한계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본 전시가 동양의 공간 개념 ‘천지인(天地人)’을 주 개념으로 세운 이유다.

생명의 순환(循環)_The Cycle of Life
우주와 생명의 근원을 자연을 보며 이해하려는 생각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특히 오행(五行)의 다섯 가지 원소 중에서 흙과 물은 오랫동안 풍부한 은유의 대상이다. 특히 공예가들은 수화(水火)를 동력삼고 목금토(木金土)의 성질을 지닌 자연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가들보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의 법칙과 저항을 직접적으로 체감해왔다. 자연스럽게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재료가 본디 지닌 본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드러나게 하는 일을 중시해왔다. 따라서 흙과 물을 통해 동아시아, 한국인들의 미와 사고에 접근하는 것은 우리의 세계 그리고 한국 미술과 공예의 면모를 읽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본 전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구성을 다섯 개의 원소-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운행변전(運行變轉)을 그림에 담고자했던 동양미술의 방법을 현대도예 그리고 사운드 스케이프의 조합으로 새롭게 시도한다. 옛 선인들은 그림을 그릴 때, 단순히 흙, 물, 나무, 사람 등의 물질이나 대상의 형태(표피, 거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바를 추출하여 한 단계 추상화시킨 본질을 그리고자 했다. 木(나무)을 그린다면 그것은 식물을 그린 것이 아니요, 무럭무럭 자라고 번식하는 생명력을 그리고자 함이다. 水(물)을 그린다면 액체상태의 물질인 물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고 아래로 스며드는 기운의 동(動)함과 역동을 그리려고 했다(水曰淪下).

물은 순환하고 유전하는 거라
용케 돌고 돌아서 제자리에 왔다.
물은 물의 길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따라 일생을 마쳤다.
흐르고 증발하고 스며들고 적시며
먼 길 돌아 흘러온 듯하지만
물은 떠난 적도 살았던 적도 없다.
백무산, 「물의 일생」부분

이 전시는 새로운 공간개념과 무에서 유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의 생리에 접근하기 위해 ‘물(水)’에 집중합니다. 물이 생명의 시작이자 끊임없는 흐름, 시간적 변화의 상징이라면, 흙(土)은 물이 흐르는 젓줄이요, 생명의 포용과 생장의 터’다. 이 전시는 5명의 ‘물의 사유’로 우리의 세계를 들여다 보려는 전시다. 하늘로부터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온 하나의 물방울은 땅에 내려와 스며들고 흘러 파동과 고저(高低)의 흔적을 만든다. 하늘에서 시작된 물은 급하지 않게 층층이 타고 흘러 논과 밭, 수목(樹木)을 적신다. 곽혜영(Kwack Hea-Young)은 비 오는 날 점토판을 내어 놓고 그 위에 비 내리는 모습을 목도한다. 점토 위에 빗방울이 닿으면 점토 혹은 그 위에 뿌려둔 산화물의 표면은 빗물의 수량과 속도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번지고 파이고 얼룩진다. 작가의 일은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물질의 만남을 지켜보다가 적절한 순간에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것을 불로 고착화하는 일이다. 흔적의 채집이 그녀의 작업이다.
수분 머금은 땅은 반작용으로 뜨거운 열기를 다시금 상층부로 밀어 올린다. 그리고 안에 품고 있던 알갱이들을 단단하게 응축시킨다. 그것이 돌이다. 돌이 쌓여 높은 산이 된다. 흙이 굳은 형태는 돌(石), 산(山)처럼 보이나 실제는 물질이 품은 기(氣)의 응집이고 융기다. 이정석 (Lee Jung-suk)은 흙을 가공하고 다시 돌로 되돌리는 작업 과정에서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그것을 가지고 불로 구워 작업한다는 것은 것은 어떤 의미인지 질문한다. 바람과 세월에 깍인 수석을 바라보는 탐석의 행위처럼 사람들은 작가가 오래된 유물마냥 재현한 돌을 보며 자연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헤아린다.

산과 들을 돌아 땅의 혈맥이 되어 흐른 물은 자신이 거쳐 온 주변 땅을 일으켜 세운다. 생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땅이 죽음과 삶을 재생산하고 순환하는 영원한 모태로서 기능하려면 나무가 단단하고 견고하게 뿌리 내리도록 제 몸을 내주어야 한다. 나무는 스스로 온전한 역사이고 삶이고 초상이다. 그 자체로 생의의 표식이다. 나무는 땅에 단단히 뿌리 박으면 수직으로 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나무는 수로다. 수로를 따라 이동한 수액이 닿는 곳마다 생명(氣)이 뻗어나간다. 때문에 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의 과정, 생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표상이었다. 이승희(Lee Seung-Hee)가 도자로 식물의 마디마디를 재현해 세운 대나무 군락은 생명의 순환과 생명력을 대변한다.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다시 고체로 모습을 달리하며 땅과 식물의 몸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이 본성이다. 이를 두고 성인들은 정형화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바꿔 적응하고 대응하는 물의 형태를 군자의 덕(德)에 자주 비유했다. 굽이 흘러온 물은 종당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숙명을 맞는다. 물은 순환적 우주관과 세계관의 상징으로 ‘뿌리 은유(Root Metaphor)’의 상징이다. 바다는 몸소 오랜 시절 사계절의 시간과 변화를 땅과 나무의 혈관을 구비 도달한 자들만이 모일 수 있는 곳이다. 도처를 거치고 흘러 모인 물은 또 다른 존재들을 끌어 안는다. 함께 출렁이고 반짝거리며 태초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은(Lee Eun)은 마치 선(禪)을 수행하는 듯 도자 조각을 잇는 반복작업을 광활하고 유기적인 ‘바다’를 대면하는 일 혹은 무수히 뜬 ‘별’을 바라보는 것에 종종 비유한다. 삶의 여정에 빗대어 물의 여정을, 바다의 파고를 은유적으로 재현하고 사유한다.
4명의 도예가의 천지인(天地人)이 정적이고 물질적인 유형(有形)이라면, 사운드 스케이프는 천지인(天地人)을 시간과 공간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역동성을 띤 무형(無形)의 세계다. 정만영(Jung Man Young)은 물의 소리와 이미지로 시간이 멈추고 외부와 단절된 화이트 큐브 관념의 공간에 역동하고 순환하는 바깥 세계를 인종한다. 그의 작업은 소리 그 자체에만 주목했던 우리에게 소리의 근원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닫혀 잇던 감각과 인식을 새롭게 확장한다.

본 전시가 도자와 사운드스케이프의 조우를 도모한 것은 단일 매체의 어법을 넘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새로운 ‘감각의 확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인들은 대상을 인식하는데 시각보다는 오감을 동원하는 것에 익숙해왔다. 서양 미술이 시각과 지성을 우선시한데 반해, 우리 미술은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과 같은 생생한 감각을 동원하여 자연을 응시하고 본질을,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존재를 이해하고자 했다. 본 전시는 나아가 우리 미술의 공간 개념을 계승한다. 우리 미술 속 여백이 공(空)이 아니듯, 본 전시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는 빈 공간 혹은 관람을 위한 동선이 아니다. 그 속에는 관람자가 상상하는 바에 따라 빗방울이 떨어져 흙을 적시고, 바람이 댓잎을 흔들며, 물길이 바위를 굽이 돌고, 바람과 안개가 공중을 휘돌고 떠다닐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에서 시작된 여정이 종당 바다에 이르러 숨을 고르는 모양새와 짭짤한 소금내가 연상되는 새로운 공감각의 세계가 펼쳐진다. 물과 흙을 재료와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5작가의 작업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것에서 존재하는 무엇을 보려하려 하고, 익숙한 것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려하는 감각의 확장과 시각의 전환이야말로 이 전시가 추구하는 바다. 도자와 사운드의 조우로 제시한 새로운 차경의 세계가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열어 ‘나’ 그리고 ‘외부 세계’를 올곧이 보고, 한동안 불온한 미물들의 창궐로 경직되어 있던 마음과 정신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홍지수_미술평론, 아트스페이스3 객원큐레이터

Artist Infomation

곽혜영

이승희

이 은

이정석

정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