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풀 한국 회화 - 조화에서 정화까지

Colorful Korean Painting - From Harmony to Purification

ARTIST
강하진, 권순철, 박재호, 오수환,
이강소, 이봉열, 최상철, 하동철
TITLE
컬러풀 한국 회화-조화(調和)에서 정화(淨化)까지
DATE
2023. 3. 3 (Fri) - 4. 15 (Sat)
SEMINAR
2023. 3. 3 (Fri) 3:00 pm
OPENING RECEPTION
2023. 3. 3 (Fri) 5:00 pm
CREDIT
디렉터 이숙희
Director Lee Sookhee

기획 심상용
Curated by Sangyong Sim
총괄 김지혜
Managed by Jihye Kim
보조 이가영
Assisted by Gayoung Lee
그래픽디자인 장윤아
Graphic Design by Yoona Jang
사진 전병철, 포토룩ㆍ조영하
Photography by Byungcheol Jeon, PhotolookㆍYoungha Jo 
번역 김미정
Translated by Kim Mijung  
컬러풀 한국 회화 - 조화에서 정화까지

심상용(서울대학교 교수/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

1. 왜 ‘컬러풀 한국 회화’인가?

8인 8색의 삶과 예술

《컬러풀 한국 회화》전의 여덟 명의 작가는 역사의 같은 시간대를 지나왔다. 1937년생인 이봉열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해방 전후에 태어났다고 보아도 좋다. ‘해방: 구속이나 억압, 속박을 풀어 자유롭게 함’, 이보다 더 아름답고 이보다 더 미학적인 용어가 달리 있을까. 이들 모두 1945년 해방을 맞은 이 나라 회화사의 초석을 닦아 왔다는 것 외에도, 어떤 선연한 동시대성의 공유가 마땅히 존재한다. 그로 인해 이들이 역사의 대변자가 아니라, 역사가 이들의 대변자가 된다.
물론 삶의 여정, 예술에 대한 태도만큼은 8인 8색 팔색조다. 추상/구상의 구분이 크게 무의미하긴 하더라도, 형식적으론 권순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추상화가다. 권순철의 회화도 충분히 추상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같은 추상이더라도, 각각의 미학적 지향은 구상/추상의 간극 만큼이나 달라 그 조화가 참으로 멋스럽다.

한국미술사 맥락에서‘컬러풀’의 정의

‘단색’이 한국을 대변하는 미학의 표제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팔색조 같은 한국미술의 변화무쌍한 매력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저변에선 한국 추상회화사의 명백한 오독, 상품경제의 편입 안에서 그리고 우리 미술의 정전화된 경직된 읽기 안에서 조급하게 공식화된 오독이 목격된다. 예술 읽기마저 유익한(?) 정보를 실어나르는 도구를 자처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식의 풍토가 침투된 탓에, 정작 우리가 성취한 조형적(기표), 미학적(기의) 수준, 독자성이 제값에 맞게 독해되지 못한 것이다.
1970, 80년대 추상미술 읽기가 그렇다. 추상은 저 먼 이상향의 일만도, 일상과의 단절을 시종 재촉하는 것만도 아니건만, 지고지순한 관념의 삽화로만 읽는 독법 일변도였다. 내용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추상이 난해한 세계인 것만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엘리트주의의 산물인 것만도 아니다. 이 세계가 모두를 위한 진주가 되긴 어렵겠지만, 이 세계에서도 느끼고(감성), 음미하고(운률), 발견하는(의미와 상징), 모든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컬러풀 한국 회화》전에 담긴 여덟 개의 세계를 보라. 그것들 가운데 가장 그것과 멀어 보이는 것에서도, 반추된 자아와 세계 인식의 태도가 컬러풀하게, 선형 궤도가 아니라 복잡한 곡선을 그리며 반영되어 있다.

목록의 은총

이 여덟의 세계를 관류하는 하나의 일치하는 관점, 회화적 신념, 미학적 태도는 부재하다. 하지만 이 통합, 범주화의 실패야말로 어찌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은총이라 해야 하리라. 범주화의 집착에서 잠시 떨어지는 은총.
이 은총 안에서 나는 이 세계들을 가공된 사회적 위상이나 이미지가 아닌, 연구나 독해의 대상, 주장이나 알리바이, 증거물로서가 아니라, 그 제각각의 것들로서 만난다. 분류와 범주화라는 비겁한 보호막, 개념의 중개나 중재를 벗어던지고서, 날 것의 그것들 자체로서. 은총이 아니고선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하나의 사례: 이봉열은 일찍이 국전 추천작가상을 수상하고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강하진에게 국전은 ‘원칙과 문법이 없는 화단정치’의 연장선 상이었다. 일정한 노선의 차이에도, 두 이름 모두 이 땅이 성취해온 예술의 금자탑에서 더 없이 소중하다. 예술이 국전과 비국전, 좌와 우의 분열을 능히 넘어서는 이유는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가의 깬 의식에 있다.
또 하나의 사례: 하동철의 충분히 차갑고 중성적인 것으로 보이는 기하학적 추상성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의 표상인 꽃상여와 신비하고 초월적인 빛의 환상을 오간다. 가장 한국적인 것, 고난 당한 땅과 그 땅의 사람들에서 오는 뜨거운 표현을 구축하고자 추구했던 권순철의 노선은 어느덧 예수상으로 흐른다. 추상과 구상, 모던과 민중, 이런 이분법은 무의미하고 무지하며 무엇보다 비인간적이다.

예술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하고, 범주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나고 경험하고 즐기는 방식이어야 한다. 나의 진부한 이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이 여덟 개의 목록은 나를 더 세게 흔들어 잠에서 깨운다. 늘 그렇듯, 깨달음의 순간은 노력보다는 기다림을 통해서 다가온다. 진실은 언제나 해답이 아니라 만남의 형태로 다가온다. 그런 만남의 순간만 우리로 어설픈 해답을 움켜쥔 채 즐거워하는 어리석은 자의 권좌를 박차고 내려와, 겸손하게 질문하는 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한다.

한국미술사의 맥락 안에서: 접붙임의 비유

우리 미술의 현대사는 서구 미술의 접붙임에서 시작된 측면이 크다. 접붙임의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접붙여지는 곳에는 이미 절단의 아픔이 있고, 접붙임으로 돋아나는 어린 가지는 그 상처를 안은 채 자란다. 제대로 된 접붙임은 그저 막대기로 지지하거나 끈으로 묶는 정도가 아니다. 접붙임의 성패는 접붙임 이후, 곧 뿌리에서 수액을 전달받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본 가지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혁명의 성공이 다음 날 민중의 지지로 판가름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처럼, 접붙임은 상처를 동반하고 뿌리와의 부단한 교신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사건이다.
《컬러풀 한국 회화》전의 여덟 명의 작가는 (예외와 차이가 있긴 하다) 한편으론 서구 미술의 접붙여진 문법을 예의 익히며 성장했고, 다른 한편으론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질곡의 요인들을 생명의 수액으로 포섭하면서, 수용된 미학을 독립적으로 소화하고 독창적으로 경작한 결과를 주로 1980, 90년대에 발표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의 회화의 저변에서 벗어나야만 했던 수용의 자취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체화의 흔적을 보아야만 한다.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숲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자, 누구든 다른 길을 가야 하나니...”우리의 우리 미술사 읽기가 누락해온 맥락이다.

시의성으로서《컬러풀 한국 회화》전

《컬러풀 한국 회화》전의 저변에는 또 하나의, 훨씬 더 위협적인‘디지털 단색화(digital monochromaticize)’에 대한 시급한 인식이 깔려 있다. 모노크롬의 뜻은 검은색과 흰색, 회색조 외에 다른 컬러가 쓰이지 않은 상태를 넘어, 작금의 디지털 문명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 결정적인 조건은 전통적인 예술의 시간보다 일곱 배는 빠르게 흐르는 ‘NFT 아트’의 시간이다. 오늘날 이런저런 예술 붐(boom)을 분주하게 야기하는 시간, 갓 첫걸음을 뗀 아이를 이내 하늘을 나는 이카루스로 둔갑시키는 시간이다. 비즈니스나 마케팅의 차원이라면 유토피아적 생태계다. 하지만 예술로선 디스토피적인 재앙의 시간이다. 일곱 배나 빠른 시간을 인식의 범주로 산술적으로 치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196,70년대의 사건과 우리 사이에는 개략 350년 정도의 시차가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 정도면 공감이나 연대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소통조차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1970, 80년대의 예술혼, 청춘을 불사르도록 촉구했던 열망, 좌절과 극복의 연대기가 벌써 잊혀진 사건이 되고, 기억 상실이 일상이 되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흐르거나 느리게 흐르지 않는다. 이 행성의 지전과 공전 질서는 적어도 아직은 견고하다. 다만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술과 그로 인한 감각과 인식 상의 왜곡이 있을 뿐이다. 즉 디지털 시대의 인간이 이전보다 7배나 더 많거나 풍성한 삶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산업기술과 사회적 기제에 대해 프랑스의 이브 미쇼(Yves Michaud)가 적절하게 지적한다. “예술의 시대는 사건들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뭔가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무엇이? 하지만 이 질문은 새로운 예술가, 새로운 전시, 개방된 표현, 새롭게 등장하는 참신한 주제 등이 생겨나는 한,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많은 동일하고 덧없는 사건들을 짧은 간격으로 배열하는 것으로, 이때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전쟁이라도 치루듯, 동원 가능한 자원을 긁어모아, 사건들을 아침저녁으로 쏟아붓는 것으로, 새롭다거나 기괴하다거나 하는 라벨을 붙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글로벌 이벤트들, 아트 비엔날레, 아트 페어, 각종 축제... 새로운 정보들이 쉴새 없이 생성되고 유포된다. 지역성을 숙청시키는 면허증 소지자들이 분주하게 날짜 분계선을 넘나든다. 지침들이 매일 새롭게 제공된다. 일곱배나 빠른 시간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을 위한 도덕적 자책감도 중요한 레퍼토리들 가운데 하나다. 각성을 촉구하고, 의지를 충동질한다. 최종 목표는 상품경제의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감추고 생각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이다. 속도 자체의 파시즘적 속성이다.
《컬러풀 한국 회화》전의 아날로그 시간은 시몬느 베이유가 현대의 세 가지 괴물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기술, 일곱 배 빠르게 흐르는 디지털 시간, 사유의 단색화를 재촉하는 기술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 함께하는 여덟 개의 세계의 공통점은 족히 일곱 배는 되고도 남을, 공허한 사건들의 부산한 나열에 그때그때 휩쓸렸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2. 컬러풀 스펙트럼

색과 빛의 출처 : 강하진-하동철 :
Hajin Kang – Dongchul Ha : The Source of Color and Light

“유달리 감성적인 한국인”의 미적 기질을 감안할 때,‘야수’나 ‘다다’, ‘엥포르멜’에 이리도 부채가 없는 세계를 구축한 사례는 흔치 않다. 이경성이 하동철의 회화를 두고 했던 말이다. 좋은 관찰이지만 관찰만으로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하동철 회화를 밝히는 빛은 감성적이다. 그 빛은 어릴 적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보았던 빛”이요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꽃상여의 빛”이다. 다만 그것을 표면화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라.”강하진은 말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또한 신뢰하려면 작가가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창작에 대한 생각과 지향하는 바가 조금 다르기는 하나, 나는 한 번도 선생-강하진-의 작업에 대하여 의문을 두지 않았다.(이종구) 그 세가지 근거로는 세 가지를 든다. 진정성, 치열한 태도, 깊은 도량. 참된 가치요, 이력서에 담기지 않는 이력이다.
하동철의 빛은 그 근원에서 그리움과 초월과 마주한다. 강하진의 색은 점을 찍고 지우는 행위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물화(物化)의 산물이다. 비물질은 물질세계에 닿아있고, 색은 땅과 우주의 교제에서 비롯된다.

감각의 필터들: 이봉열-박재호
Bongreal Lee - Jaeho Park : Sensory Filters: From Harmony to Purification

한때는 구성적 요소, 감성적 터치의 운행마저 내려놓았던 이봉열의 회화에 다시 목화 봉오리가 맺혔다. 김복영은 이봉열의 부재에서 ‘달관의 경지’를 논하지 않았던가. 이봉열의 감각은 표현할 때가 아니라 절제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애착이 아니라 애착을 버릴 때 감각은 날 선 직관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부드러운 앵포르멜, 첨예한 부재, 그리고 고향의 목화송이다. 이것은 엥포르멜도, 모노크롬도, 감각의 드로잉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이봉열일 뿐이다.
박재호의 감각은 서정의 숙성으로 향한다. 그 감각질에 의해 서정성은 덧없는 유희의 덫을 피하면서 동시에 빈혈의 관념에 매몰되지 않는다. 감각은 필요한 딱 그만큼의 조형을 계량해내는 고도의 균형추이다. 이 균형추가 없을 때 회화는 수다스러운 입, 천한 개념놀이로 떨어지고 만다. 이 감각에 이끌릴 때, 회화는 불가지적 영계(靈界)를 헤매거나 무의식의 심연으로 낙하하고, 고졸한 관념의 향로를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명상과 수행의 긴장: 최상철-오수환
Sangchul Choi – Sufan Oh : Tension Between Meditation and Practicing Asceticism

돌이 구르며 남긴 궤적이 1 천 번 겹치면서 톤(ton)을 만들어낸다. 작가 주체는 한결 뒤로 물러난다. 최소한의 개입이다. 무의식인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이 소환되는가? 아니다. 하지만 돌이 구를수록 의식은 또렷해진다. 무의식이 아니라 선연한 의식이다. 존 케이지(John Cage)의 우연성은? 하지만 최상철에서 뇌관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모든 것은 결정적으로 중력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기 위한 저항이랄까. 최상철의 드로잉은 물리법칙의 순리를 따르면서, 지난 세기의 ‘반예술’의 넌센스를 조용히 나무란다.
오수환의 선은 힘이 있으되, 그 힘은 대상에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운행에서 오는 힘이다. 태도는 분명하지만 예측은 불허다. 선언적이지 않고 포용적이다. 행위이되 욕망이 비워진 행위다. ‘비운다’의 의미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진리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 스스로 수동태가 되는 것, 무심(without intention) 미학이다. 마음을 비워야 영혼은 잔잔해지고, 의식의 안개가 걷힌다. 행위는 덧없는 기능에서 자유로워진다.

미(美)의 벡터로서 붓 터치: 이강소-권순철
Kang-So Lee – Sun-Cheol Kwun : Brush Strokes as an Aesthetic Vector

감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감각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야 한다. 붓이 가는 대로 하지만, 마치 뱃길이나 하늘길처럼. 붓은 가야할 곳으로만 간다. 붓에 마음을 실는 게 아니라 마음에 붓을 담그는 것, 그럴 때 붓은 감각이 이끄는 만큼만 간다. 붓 끝에서 맑은 정신, 청명한 기운이 감돈다. 머무름에서 생성되는 독소(毒素)들, 애착, 집착, 매몰이 씻겨나가기 때문이다. 새나 나룻배를 그리더라도, 반쯤만 재현이고 나머지는 표현이다.
운명, 역사의 소용돌이, 모두 필연성의 묘사다. 권순철의 회화는 필연성의 고백이다. 그 자신의 고백이고, 사람들의 고백이고 시대의 고백이다. 이강소가 흘려보내는 것을 권순철은 애써 붙잡는다. 이강소가 메타인식을 논할 때 권순철은 땅의 인식을 부여잡는다. 이강소는‘사람다운 삶’의 미적 등가물로서 회화를 말한다. 권순철은 ‘좋은 표정을 가진 선한 얼굴’에서 그것을 본다. 두 세계의 저변에 두 작가의 도덕적 인격이 스며있다.  
Colorful Korean Painting - From Harmony to Purification

Sangyong Shim
(Professor, Seoul National University; Director,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1. Why Colorful Korean Painting?

Life and Art of Eight Different Artists in Eight Different Colors

The eight artists from the exhibition Colorful Korean Painting have passed through the same period of history. Except for Bongreal Lee, who was born in 1937, it's not too much to say the rest of the artists were born right around the national liberation of Korea. "Liberation: freeing oneself from imprisonment, oppression, or restraint." What other term can be more beautiful or more aesthetic than this? In addition to the fact that all of those artists have laid the foundation for the history of painting in Korea, which was liberated in 1945, there is surely a fair amount of contemporaries. Similarly, they become not representatives of history, but history becomes a representative of them.
Eight artists' journeys of life and attitudes toward art certainly have their personal colors and shades. Although the distinction between abstract painting and representational painting isn't largely meaningful, everyone except Sun-cheol Kwun is an abstract artist in their form. However, Sun-cheol Kwun's paintings are seemingly abstract enough. In addition, even if they all fall into the same category of abstract painting, each aesthetic orientation is as different as the gap between the representational and the abstract, so the harmony is truly wonderful.

Definition of 'Colorful' in the Context of Korean Art History
'Monochrome' shouldn't be the aesthetic terminology that represents Korea. It stems from disregard for and insensitivity to the ever-changing charm of Korean art that resembles the multi-colored fairy pitta. At its foundation, we can witness an apparent misreading of Korean abstract painting history. Also, it was misread due to a hastily-created formula within the incorporation of the commodity economy and the rigid reading of our art at war's end. Because of the penetration of neoliberal knowledge tendencies, which claims to be a tool for spreading so-called beneficial knowledge, even reading art was not done properly within the formative (signifiant), aesthetic (signifié) level, and the independence we have achieved has not been read properly.
This is the case for abstract art reading in the 1970s and 80s. The concept of 'abstract' was neither only a distant utopia nor a constant push to disconnect from daily life, but it was considered merely as an illustration of noble and pure ideas. Even if they don't explain each and every meaning, the abstract world is not all difficult. It is not just a byproduct of elitism, as is often said. It's hard for this world to be a diamond in the rough for everyone, but even in this world, everything including feeling (sentiment), admiring (rhythm) and discovering (meaning and metaphor) is possible. Look at the eight worlds in the exhibition Colorful Korean Painting. Even in what seems most distant among them, the attitude of perceiving the world and reflecting on oneself are echoed in a colorful way and in a complex curve, not in a linear orbit.

The Grace of the List

There isn't one consistent perspective, a single descriptive belief, or aesthetic attitude that penetrates these eight worlds. Yet what a relief this categorization failed! We'd rather call it grace ―grace that comes from staying away from the obsession for categorization. Within this grace I encounter these worlds as individual entities, not as processed social status or images―the objects of reading or research, claims, alibis, or evidence. If it were not for grace, it would be impossible to meet them in the raw, escaping the arbitration, intervention of concepts, and cowardly shields of classification and categorization.
Consider the following example: Bongreal Lee won the Recommended Artist Award (1972) at Gukjeon and served as a Gukjeon judge. To Hajin Kang, Gukjeon was an extension of "politics of an art society without principles and grammar." Even though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artists' paths, those two names are equally precious in the monument that Korean art has achieved. Korean art is way beyond the dichotomy between Gukjeon and non-Gukjeon or the division of the left and right wing, thanks to the artists' awakening consciousness.

Consider another example: Dongchul Ha's geometric abstraction, which looks cold and neutral enough, moves back and forth in between the flower bier (the representation of his father's death) and the illusion of mysterious and transcendent light. Sun-cheol Kwun's path was seeking to build up the heated expressions that derived from the suffering land and its people, the most Koreanized element. Unbeknownst to him, that path gravitated to the face of Jesus. Abstraction and conception, and modernity and the people, both of these dichotomies are meaningless, unnecessary, and above all, inhumane.
Art should be a way to open our senses, and to meet, experience and enjoy it, free from the temptation of categorization. Since it's not derived from my typical reasoning, these eight lists shake me even harder to awaken me. Most often, 'ah-ha' moments come through waiting rather than effort. The truth always comes in the form of a meeting, not an answer. Only such a moment of meeting makes us step down from the throne of the foolishness, being satisfied with clumsy answers, and return to the position of the humble questioner.

Within the Context of Korean Art History: A Metaphor of Grafting

It is safe to say that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art started as a grafted version of Western art. The meaning of 'graft' is by no means simple. A pain from amputation already exists where it is grafted, and young branches, for example, which sprout from a graft, grow with the wound inside their chests. Proper grafting requires more than just supporting with a stick or tying with a string.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e grafting process is whether the sap can be delivered from the root soon after grafting, which is more crucial than the main branches. According to Slavoj Zizek, it is no different from the success of a revolution being decided by the people's support the day after. Similarly, grafting is an event that must be accompanied by wounds and consistent communication with the roots.
On the one hand, the eight artists of Colorful Korean Painting--with minor differences and exceptions--grew up mastering the grafted grammar within Western art. On the other hand, they all independently digested accepted aesthetics and published originally-cultivated results during the 1980s and 90s. This vital 'sap' sucked up factors of confinement that make up the foundation of our society today. At the base of their aesthetics and form, traces of painful reification, which is more painful than those of acceptance, clearly exist. It reminds me of a verse from the poet Virgil :“Anyone who wants to live out of this forest should take a different path." This is the context that our reading of art history is missing.


Colorful Korean Painting as a Timely Subject

At the foundation of this exhibition, there is another urgent awareness of 'digital monochromization' which is even more threatening. The meaning of 'monochrome' goes beyond the absence of colors other than black, white, and gray, and is also a current state of digital civilization. The decisive condition is 'the clock' of NFT art, which moves seven times faster than that of traditional art. It is the clock to busily cause one art boom or another today, and to turn a child who has just taken their first step into a flying Icarus. In terms of business or marketing, it would be a utopian ecosystem. Nevertheless for art, it's a time of dystopian disaster. What happens when you mathematically convert a seven-time-faster clock within the scope of perception? It can be said that there will be a time difference of approximately 350 years between the events of the 1960s or 1970s and the present. At this point, it is almost impossible to expect even minimal communication, not to mention empathy or solidarity. It is not surprising that memory loss becomes a daily habit. The urged aspiration to devote youth and the artistic soul of the 1970s and 80s has already become forgotten, and so has the history of frustration and overcoming.
But time does not move faster or slower. The order of the rotation and revolution of this planet is firm thus far. However, there are just technologies that make time seem to flow faster and from which sensory and cognitive distortions have resulted. In other words, it is not as if humans in the digital age experience seven times more time or richer lives than before. French Philosopher Yves Michaud appropriately identifies the industrial technology and social mechanisms that make time appear to move fast: "The age of art should be that of events. Something has to happen constantly. But what should happen? However, this question is not a big deal as long as new artists, new exhibitions, open expressions, new emerging themes, etc. are born."
When a number of identical and futile events are arranged at short intervals, the content is not important. It is enough to label the events pouring in day and night as 'new' or 'bizarre' by raking in available resources as if in a war. Global events, art biennales and fairs, various festivals, and new information are steadily produced and circulated. Licensees purging locality busily cross the international date line. Daily guidelines are repeatedly provided. Moral remorse for those who fall behind a seven times faster clock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repertoires. It urges awakening and inspires will. The final goal is to hide the violent ideology of the commodity economy and to thwart the idea itself. This is a fascist property of speed.
The analog time of the exhibition Colorful Korean Painting does not trust the technology that Simone Weil cited as one of the three modern monsters, the digital time that flows seven times faster, and the technology that promotes monochromization of thoughts. What the eight worlds gathered here have in common would have been impossible if it had been constantly swept away by a bustling list of empty events every time―events that could easily multiply seven fold.


2. Colorful Spectrum
Hajin Kang – Dongchul Ha: The Source of Color and Light

Given the aesthetic temperament of Koreans, which is extraordinarily emotional, "it is rare to see a world built without owing anything to ‘Fauvism’, ‘Dada’, or 'Art Informel'." This is what Kyungsung Lee said about Dongchul Ha's painting. Even though it's a good observation, it's hard to truly meet people simply by observing. The light that brightens up Ha's paintings is emotional. It is the light "he saw when he was waiting for his mother to return home when young" and "the light of the flower bier associated with the death of his father." It's just a difference in the way he brings it to the surface.

"Draw an invisible world," says Hajin Kang. However, to trust the invisible world as well, the artist should be trustworthy. "Although my thoughts and goals on creation are a little different from his, I have never questioned Kang's work", says Lee Jong-gu. There are three reasons for his belief: authenticity, a competitive attitude, and a deep mind. These hold true value that cannot be embodied in a résumé.

Dongchul Ha's light faces longing and transcendence at its source. For Hajin Kang, color is the product of reification created by the repetition of the act of dotting and erasing. Non-matter touches the material world, and color is derived from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arth and the universe.

Bongreal Lee – Jaeho Park: Sensory Filters: From Harmony to Purification

A cotton bud was formed again in Bongreal Lee's painting, where the application of compositional elements and emotional touches had once been abandoned. Didn't Bok-young Kim discuss 'the state of transcendence' in his absence? Lee's sense is revealed when he restrains it, not when he expresses it. When he is not attached to it, but abandons it, his senses would come back as sharp intuition. It's soft 'Art Informel', a sharp absence, and a cotton bud from his hometown. However, that can't be Art Informel, monochrome nor sensory drawing. It's just Bongreal Lee himself.

Jaeho Park's senses head to the maturation of lyricism. By its sensuality, lyricism avoids the trap of ephemeral amusement and is not buried in the notion of deficiency at the same time. Senses are high-quality counterweights that measure exactly the right amount that is needed for the art. In the absence of this, paintings fall into a talkative mouth and a vulgar conceptual play. When attracted by this sense, the painting doesn't have to wander through the inconceivable spirituality or fall into the abyss of unconsciousness, or separately prepare a small incense burner for releasing ideas.

Sangchul Choi – Sufan Oh: Tension Between Meditation and Practicing Asceticism

The trajectory left by the rolling stone overlaps 1,000 times and creates a 'ton'. The artist himself steps way back. It is a nominal intervention. Is it unconscious? Is Jackson Pollock being summoned? No, the more the stone rolls, the clearer the awareness becomes. It's not unconsciousness, but a vivid consciousness. What about John Cage's coincidence? To Choi, the detonator is not a coincidence, but a necessity. Essentially, gravity works on everything. It's a form of resistance not to resist. Sangchul Choi's drawings follow the law of physics and quietly criticize the nonsense of the 'anti-art' of the last century.

The line of Sufan Oh has strength, but its strength comes from free driving without being bound by the object. The mindset is clear but unpredictable. It is not declarative but inclusive. It is an act, but an act of empty desire. 'Emptying' signifies waiting for something. It's taking a stance of "accepting something that passes through the truth, completely naked", and it's a mindless aesthetic (without intention) that becomes a passive voice of its own accord. When the mind is emptied, the soul calms down and the fog of consciousness is lifted. Actions are freed from evanescent functions.

Kang-So Lee – Sun-Cheol Kwun: Brush Strokes as an Aesthetic Vector

In order not to be drown in your senses, you must let the senses flow outward instead of holding onto them. The brush goes as it pleases, but it knows where it must go, like the sea route or the skyway. Instead of loading your mind on the brush, when you dip the brush in your mind, the brush goes only as far as the senses lead. There is a clear mind and energy at the tip of the brush. This is because toxins, burial, attachment, obsession ―produced by remaining― are washed away. Even if you draw a bird or a boat, only half of it is reproduction and the remaining half is expression.
Fate and the whirlwind of history are both depictions of inevitability. Sun-cheol Kwun's painting is a confession about that inevitability. It's his own confession, the people's, and that of the times. Kwun tries to catch what Kang-so Lee lets go. When Lee discusses meta-recognition, Kwun holds the perception of the land. Kang-so Lee refers to painting as an aesthetic equivalent of 'humane life'. Sun-cheol Kwun sees it in "a kind face with a good facial expression." The moral character of the two artists permeates the foundation of the two worlds.

Artist Infomation

강하진 康夏鎭 HaJin Kang

b.1943

주요 개인전
2019 PICI 갤러리, 서울, 한국
2011 유네스코 A.poRT, 인천, 한국
2002 인사아트센터, 서울, 한국
1986 Q Gallery 초대전, 도쿄, 일본
1982 관훈미술관, 서울, 한국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03 《드로잉의 새로운 지평》, 덕수궁미술관, 서울, 한국
1992 《92’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1983 《이탈리아·한국 현대미술전》, 밀라노, 이탈리아
     《상파울로 비엔날레》, 상파울로, 브라질
1974 《한국실험작가전》, 대구백화점 화랑, 대구, 한국
1972 《제4회 신체제(新體制)전》, 신문회관 화랑, 서울, 한국
외 다수

Selected Solo Exhibitions
2019 PICI Gallery, Seoul, Korea
2011 UNESCO A.poRT, Incheon, Korea
2002 Insa Art Center, Seoul, Korea
1986 Q Gallery, Tokyo, Japan
1982 Kwanhoon Gallery, Seoul, Korea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03 Drawing: Its New Horizons, National Museum of Art, Deoksugung, Seoul, Korea
1992 92 Contemporary Art Exhibition,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nd Contemporary Art, Seoul, Korea
1983 Italia·Korea Contemporary Art, Milano, Italy
São Paulo Art Biennial, São Paulo, Brazil
1974 Korea Experimental Artists, Daegu Departement Gallery, Daegu, Korea
1972 The 4th Shincheje, Korea Press Center Gallery, Seoul, Korea
And more 

권순철 權純哲 Suncheol Kwun

b.1944

학력
1984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197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6 대구시립미술관, 대구
2010 가나아트 뉴욕, 미국
2003 현대미술관, 트루아, 프랑스
1993 제4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1992 프랑크 하넬 화랑, 프랑크푸르트, 독일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19 《종이 충격전》, 양평군립미술관, 양평
2012 《한국현대미술-거대서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0 《Polyptyque》, 카드놀이박물관, 이시 레 물리노, 프랑스
2009 《노스탤지아》, 리오랜초 컨퍼런스 센터, 리오랜초, 미국
2007 《Les Passages NY》, 허친스 갤러리, 뉴욕, 미국
외 다수

Education
1984 M.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1971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16 Daegu Art Museum, Daegu, Kroea
2010 Gana Art New York, USA
2003 Modern Art Museum of Troyes, Troyes, France
1993 The 4th Lee Jung Seop Art Prize Winner Exhibition, Chosunilbo Museum, Seoul, Korea
1992 Galerie Frank Hanel, Frankfurt, Germany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9 PAPER SHOCK, Yangpyeong Art Museum, Yangpyeong, Korea
2012 Contemporary Korean Art: Grand Narrativ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Gwacheon, Korea
2010 Polyptyque, The French Museum of the Playing Card, Issy les Moulineaux, France
2009 Nostalgia, Rio Rancho Conference Center, Rio Rancho, USA
2007 Les Passages NY, Hutchins Gallery, New York, USA
And more

박재호 朴在鎬 Jaeho Park

b.1940

학력
1975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196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03 포스코 갤러리, 포항
1992 현대아트갤러리, 서울
1988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84 신세계미술관, 서울

주요 단체전
2015 《한국추상화가 15인의 어제와 오늘》, 안상철 미술관, 양주
1994 《Hungary – Korea전》, Keptez, Rondella Gallery, 부다페스트, 헝가리
1987 《아세아국제미술전》, 서울, 타이페이, 대만 (1985~1987)
1986 《Transmission'86 Nagoya》, 서울&일본전, 나고야, 일본
1983 《Arts Contemporary Corean》, 밀라노, 이탈리아
1982 《제5회 India Triennale》, 뉴델리, 인도
외 다수

Education
1975 M.A. in Art Education,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1963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olo Exhibitions
2003 POSCO Gallery, Pohang
1992 Hyundai Art Gallery, Seoul, Korea
1988 Art Council Korea Art Center, Seoul, Korea
1984 Shinsegae Museum, Seoul, Korea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515 Korean Abstract Artists, Yesterday and Today, Ahn Sang Chul Museum, Yangju, Korea
1994 Hungary – Korea, Keptez, Rondella Gallery, Budapest, Hungary
1987 Asia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Taipei, Taiwan (1985~1987)
1986 Transmission'86 Nagoya, Nagoya, Japan
1983A rts Contemporary Corean, Milano, Italy
1982 The 5th India Triennale, New Delhi, India
And More

오수환 吳受桓 Sufan Oh

b.1946

학력
196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2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대구
     에프레미디스, 베를린, 독일
2018 가나아트센터, 서울
2012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0 가나아트 뉴욕, 미국
2006 갤러리매그, 파리, 프랑스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22 《4편의 시: 한국의 추상》, 헬렌제이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1 《황혜홀혜 恍兮惚兮》, 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20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덕수궁
2019 《Painting and Existence》, Whitestone Gallery, 타이페이, 대만
2010 《Korean Art Festival》, 하버포드미술관, 필라델피아, 미국
외 다수

Education
1969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22 Indang Museum, Daegu, Korea
Efremidis, Berlin, Germany
2018 Gana Art Center, Seoul, Korea
2012 Kim Chong Yung Museum, Seoul, Korea
2010 Gana Art New York, New York, USA
2006 Gallery Maeght, Paris, France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2 FOUR POEMS: KOREAN ABSTRACTION, Helen J Gallery, Los Angeles, USA
2021 Sunset, Sunrise, Gyeongnam Art Museum, Changwon, Korea
2020 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Calligraphy, MMCA Deoksugung, Seoul, Korea
2019 Painting and Existence, Whitestone Gallery, Taipei, Taiwan
2010 Korean Art Festival, Haverford Museum, Philadelphia, USA
And more

이강소 李康昭 Kangso Lee

b.1943

학력
19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1 《몽유》, 갤러리현대, 서울
2019 《Becoming》, 팔라조 카보토, 베니스, 이탈리아
2016 《이강소》, 생테티엔 근현대미술관, 생프리에스트 앙 쟈레, 프랑스
2015 《Space of Shadow》, 우손갤러리, 대구
2011《 Natural》, PKM Trinity 갤러리, 서울
《이강소》, 대구시립미술관, 대구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21 《시를 위한 놀이터》, 대구시립미술관, 대구
2020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
2016 《단색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단색화》, 도멘 드 케르게넥 미술관, 모르비앙, 프랑스
2015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 문화역서울284, 서울
2011 《Tell me Tell me: 호주 – 한국 현대미술 1976-2011》, 시드니 현대미술관, 시드니, 호주
외 다수

Education
1965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
2021 From a Dream, Gallery Hyundai, Seoul, Korea
2019 Becoming, Palazzo Caboto, Venice, Italy
2016 Lee Kangso, Musée d’Art moderne et Contemporain de Saint-Etienne Métropole, Saint-Etienne, France
2015 Space of Shadow, Wooson Gallery, Daegu, Korea
2011 Natural, PKM Trinity Gallery, Seoul, Korea
Lee Kangso, Daegu Art Museum, Daegu, Korea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
2021 Playground for Poetry, Daegu Art Museum, Daegu, Korea
2020 The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Calligraphy, MMCA Deoksugung, Seoul, Korea
2016 Dansaekhwa, l’aventure du monochrome en Corée, des années 70 à nos jours, Domaine de Kerguéhennec, Bignan, France
2015 Korean Painting, Beyond the Borders, Cultural Station 284, Seoul, Korea
2011 Tell me Tell me: Australian and Korean Contemporary Art 1976-2011, Museum of Contemporary Art Sydney, Australia
And more 

이봉열 李鳳烈 Bongreal Lee

b.1937

학력
196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17 《공간여정》, 현대화랑, 서울
2009 Atelier 705, 서울
1999 인 갤러리, 서울
1975 라 쿠르 댕그르화랑, 파리, 프랑스
1968 신세계화랑, 서울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16 《Simple 2016》,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02 《사유와 감성의 시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95 《한국현대회화전》, 중국미술관, 베이징, 중국
1984 《삿포로 트리엔날레》, 북해도미술관, 삿포로, 일본
1981 《한국현대드로잉전》, 브루클린미술관, 뉴욕, 미국
1978 《Salon de Mai》, 파리, 프랑스
외 다수

Education
1963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17 Voyage with Space, Hyundai Hwarang, Seoul, Korea
2009 Atelier 705, Seoul, Korea
1999 In Gallery, Seoul, Korea
1975 La Cour d’Ingres, Paris, France
1968 Shinsegae Hwarang, Seoul, Korea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6 Simple 2016,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Korea
2002 Age of Philosophy and Aesthetics,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a, Seoul, Korea
1995 Korean Contemporary Art, National Art Museum of China, Beijing, China
1984 Sapporo Triennale, Hokkaido Museum, Sappro, Japan
1981 Korean Drawing Now, Brooklyn Museum, New York, USA
1978 Salon de Mai, Paris, France
And More

최상철 崔相哲 Sangchul Choi

b.1946

학력
196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1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20 AV 모던 & 컨템포러리, 제네바, 스위스
1996 갤러리 깃쇼도, 교토, 일본
1990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1986 관훈갤러리, 서울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22 《선도 악도 아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17 《아시아 디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16 《동작의 전환》, 소마미술관, 서울
2013 《국제현대미술 광주아트비전》, 광주비엔날레관, 광주
2012 《실험적 예술 프로젝트 1부 매너와 풍경》,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외 다수

Education
1969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21 Art Space 3, Seoul, Korea
2020 AV Modern & Contemporary, Geneva, Switzerland
1996 Kisshodo Gallery, Kyoto, Japan
1990 Art Council Korea Art Center, Seoul, Korea
1986 Kwanhoon Gallery, Seoul, Korea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2 Neither Good nor Evil,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Korea
2017 ASIA DIVA,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2016 Transition of movement, SOMA, Seoul, Korea
2013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Gwangju Art vision, Biennale Exhibition Hall, Gwangju, Korea
2012 Experimental Art Project - Manner & Scene, Daegu Art Factory, Daegu, Korea
And more 

하동철 河東哲 Dongchul Ha

b.1942-2006

학력
1979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스쿨 오브 아트 대학원 판화과 졸업
196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196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04 선화랑, 서울
2002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5 진화랑아트센터, 서울
1988 갤러리현대, 서울
1987 다이또화랑, 삿포로, 일본
1981 펜로즈갤러리, 필라델피아, 미국
외 다수

주요 단체전
2011 《추상하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서울
200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작가 드로잉특별전》, 세종문화회관, 서울
2007 《한국현대판화 1958-2007》,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05 《서울미술대전-회화》,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03 《추상화의 이해》, 성곡미술관, 서울
외 다수

Education
1979 M.F.A. in Etching, Tyler School of Art, Temple University, Philadelphia, USA
1969 M.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1965 B.F.A. in Paint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04 Sun Gallery, Seoul, Korea
2002 Gana Art Center, Seoul, Korea
1995 Jean Art Center, Seoul, Korea
1988 Gallery Hyundai, Seoul, Korea
1987 Daito Gallery, Sapporo, Japan
1981 Penrose Gallery, Philadelphia, USA
And mor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11 Abstract It!, MMCA Deoksugung, Seoul, Korea
2008 Venice Biennale Korean Artist Special Drawing, Sejong Center, Seoul, Korea
2007 Contemporary Korean Prints 1958-2007,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Gwacheon, Korea
2005 The Seoul Art Exhibition,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3 Understanding of Abstract Paintings, Sungkok Museum, Seoul, Korea
An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