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기’展 ‘
그리기’라는 단어는 쉽게 사용되지만 사실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표현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기’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그리기’라는 말에 드로잉과 회화의 개념이 뒤섞여 있어 많은 사람이 더욱더 헷갈려 한다.
수많은 ‘그리기’의 모습 중에서도 이번 전시에서 재조명되는 드로잉이란 일반적으로 선으로 그린 회화 표현이나 그 기술을 의미하는데 소묘나 데생, 스케치, 크로키 등의 용어를 모두 드로잉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심지어 우리가 어린 시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케치북에 채워 넣었던 그림이나 다이어리에 끄적여 놓은 낙서들마저 넓게는 드로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처럼 드로잉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가까이 있는,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친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다만 드로잉은 그 범위와 한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그 첫 만남에서 우리를 막막하게도 만든다.
드로잉의 재료만 해도 연필, 목탄, 펜, 크레용, 파스텔, 잉크 등 무수히 많으며, 그 목적에 따라서도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뉜다. 하지만 그렇게나 다양한 얼굴을 지닌 드로잉도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통적으로 드로잉은 완성된 예술의 한 형태로 여겨지기보다 완성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나 수단이라고 경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대가들은 그들의 회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 드로잉을 사용했고 그들의 드로잉을 보는 일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전시의 목적을 지니지 못한 그 습작들은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그들의 작품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섬세하고 기발안 드로잉으로 가득 차있는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작업 노트만 보더라도 드로잉이 단순히 밑그림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처럼 드로잉은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해 그들의 내면 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때문에 도로잉이야 말로 작가들의 복잡하고 불분명한 구상을 구체적인 현상으로 승화시켜주는 개념의 완성이라고 볼 수있다.
이번 전시는 9명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다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드로잉전이다. 이 전시를 통해 그들이 간직한 다양한 세계관과 이야기의 수 만큼이나 여러 모습의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다. 그들이 선보이는 드로잉은 대로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런 투박함은 불필요한 겉치레나 꾸밈없이 진솔하고 친숙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2014년 2월, 한 해의 시작에서 작가들이 그려낸 그들만의 도로잉 세계와 교감하며 우리 스스로가 그려나가고 있는 삶이란 그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드로잉을 간결한 터치와 조형미가 안상적인 추상화로 만들지, 강렬한 색채가 돋보이는 채색화로 만들지 정하는 일은 오롯이 작가 자신의 몫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 드로잉을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단순히 빈 종이에 선을 긋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드로잉이 없듯이 우리의 인생도 드로잉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 시작하는 이 겨울에 우리도 다시, 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