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나 점 수
Na, Jeom Soo
TITLE
無.名
DATE
2018. 11. 9 (Fri)- 12. 21 (Fri)
OPENING RECEPTION
2018. 11. 9 (Fri) / pm 5
무명(無. 名)
2018. 11. 09 – 12. 08, ARTspace3

조각가 나점수가 보여주는 ‘역설의 아름다움’은 관객들을 늘 설레게 한다. 그의 작품 앞에 서 있을 때 얻는 기쁨은 말로 쉽게 설명되지 않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형상을 지우기 위해 형상을 구축하고, 공간을 점거하지 않기 위해 공간을 압도하고, 말하지 않기 위해 시(詩)를 드러내며, 조각의 기념비성을 정복하기 위해 쓰러진 나무를 당당히 세우는 그의 작업을 혀와 뇌의 역량을 빌려 온전히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역설 중에 이런 역설이 없고, 아름다움 중에 또 이런 아름다움이 없다.
그의 조각 행위는 이러한 역설의 실천이다. 의식(意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동보다는 무한히 반복되는 무상적(無償的) 노동으로 질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나무를 사랑하기 위해 푸르름을 다한 나무의 처연한 죽음을 작업실로 데려온다. 그리고 작가는 나무에 아프지 않은 상처를 내고, 힘들지 않은 ‘서 있음’과 ‘기욺’을 제안한다. 여기에 종종 용접된 쇠붙이를 쓰긴 하는데, 그것은 그저 나무의 어떤 ‘상태’를 돕기 위해 결부된 것일 뿐이다. 그 상태는 다름 아닌 ‘자연의 심리적 균형’이다. 일전에 김영기 선생이 말했듯, 이 근원적인 ‘한결’의 정중동(靜中動,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은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됨으로써 선(禪)의 화(畵)를 이루는 것’이다. 자연과의 일체감에서 오는 화(畵)는 결국 불균형의 사라짐으로 인한 화(和)로 귀결된다.

그래서 작가에게 조각의 모양새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형태의 정신과 형태의 원인이 중요한 것이다. 그가 오랜만에 손댄 영상 작업에서도 나무가 자연적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다. 느린 화면으로 바닥에 넘어지고 튕기는 나무가 만들어 내는 덩어리의 갈라짐과 파편의 흩어짐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도, 나무 자신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불완전한 4차원인 우리의 시공간에서 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존재 조건인 중력 외엔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위로 높이 뻗어 서 있는 그의 나무 조각들도 사실 이 ‘땅의 끌어들임’이 없었으면 자유롭게 공간을 부유하거나 외계로 솟구쳤을 것이다. 서 있음도, 기울어 있음도, 누워 있음도, 모두 나점수가 만든 게 아니다. 모든 것은 공(空)하고, 모든 ‘있음’은 ‘없음’을 원인으로 한다는 것을 아는 조각가가 아무것도 안 보여줄 순 없으니 그저 ‘최소의 조건’만 남기는 게 상책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나점수가 ‘속삭이듯’ 내세우는 전시 제목은 <무명(無. 名)>이다. 크게 떠들 필요도 없다. 이름 없는 것의 이름을 뭐 하러 강하게 주장하겠는가. 더군다나 어떤 사물이나 존재의 의미가 하나의 가능성으로 고정될 수 없고, 그 성질도 하나의 관점으로 결코 파악될 수 없지 않은가.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밝음과 어둠, 참과 거짓, 추상과 구상, 조각과 조각이 아닌 것, 명(名)과 무명(無名).., 이 세상 모든 양극적인 것들은 인간의 초라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공’에서 출발하여 멀리 돌고 돌아 다시 ‘공’으로 회귀한다. 제목 ‘무명’은 세계의 이치와 순리에 대한 나점수식의 동의와 존중이다. 물론, 이러한 세계의 순리에 대한 굴복에도 우리의 존엄성은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그는 입버릇처럼 “하나를 세워 전체를 무너뜨리고 싶다.”라고 ‘예도(藝道)’를 말한다. 이름을 세워 모든 것들의 이름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무명의 드러남’이고 ‘세계의 드러남’인 것이다. 인간학으로서의 종교적 각성이 그러하고, 물리적 단서들로 형이상학적 본질을 좇는 순수과학이 그러하고, 진·선·미의 오묘한 연결을 믿는 철학도 그러하다. 그중 예술은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게 세계를 무너뜨리고 재구성할 수 있다.

나무의 형태나 나무의 상징이 아니라 ‘나무 존재의 근원적 상태’를 강조하면서 예술적으로 한 걸음 더 성숙한 면모를 드러낸 나점수의 <무명(無. 名)> 展은 거침없어 보였다. 작가는 조형의 자발성에 정신의 ‘날카로움’을 담는 법을 완전히 이해한 듯하다. 인사동에서 통의동으로 이전하여 새로이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3의 배려 깃든 공간은 전시 완성도를 더욱 높여 주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나점수 조각이 미적으로, 철학적으로, 시적으로 점점 더 신뢰성을 갖게 되어 즐거운 건 바로 관객인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감히 평가할 순 없지만, 최근 그의 행보는 아주 옳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무명’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작가의 개인전을 소개하는 자리치고는 글이 조금 거칠고 들떴다. 그러나 영혼이 썩 맑지 못한 필자에게도 그의 ‘이름 없는’ 조각들과 그 조각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사유의 변조는 참으로 아름다웠음은 부정 못 할 사실이다.

이 재 걸 (미술비평)


Being Nameless
November 9 ~ December 8, 2018
ARTspace3

By Lee Jae-geol, Art Critic

Viewers are always thrilled by the beauty of paradox sculptor Na Jeomsoo demonstrates. As the pleasure they get before his works is beyond words, such a pleasure is even greater. His work process is akin to forging a shape only to erase it, dominating a space only to not occupy it, uncovering a poem only to not speak it, and setting up a fallen tree to conquer a sculptural monumentality. Giving a full account of his works with the caliber of one’s tongue and brain seems like an impossible task. The paradox they raise and the beauty they engender are the best of their kind.

His sculptural act is an application of such a paradox. It brings about the pitiful death of a tree whose greenness comes to an end in his studio, and is deeply involved with materials through his infinitely recurring gratuitous labor as opposed to labor that is done to attain some perceptual purpose. He makes a painless gash in the tree so as to encourage it to stand and lean in an undemanding manner. A piece of iron is attached to it to assist its ‘state’ which is none other than ‘a psychological balance of nature.’ As Kim Young-ki mentioned before, this underlying consistency, e.g. ‘motion in stillness’ (movement in silence), refers to a state in which he achieves Zen painting by becoming one with his object. Painting that arises from a sense of unity with nature concludes with harmony, ridding the work of any imbalance.

To the artist, the form of his sculpture is thus of no significance. The spirit and reason behind the form are what matter. A slow-motion video he spent a great deal of time on features a wood as it falls down naturally. Any split in a chunk or scattering of shards caused by the wood as it fell to the ground is made neither by us nor the wood will. Nothing intervenes in our space-time of the perfect four dimensions, save for gravity, the most elemental physical condition. His wooden sculptures that stand and spread upward might float freely in space or soar up into the air had it not been for gravity. Nothing is made by Na, regardless of whether they are standing, leaning, or lying down. As a sculptor who knows that everything exists in a void and every being is caused by “nothing” is able to show nothing, it is best to rely on only a minimum condition.

The title Na presents for this solo show is Being Nameless which seems as if it is being whispered. It is needless to talk loudly. Why do we have to shout the name of a nameless thing? Moreover, the meaning of any thing or being cannot be fixed as one and its nature cannot be grasped from only a single perspective. All opposing things in this world (life and death, man and nature, light and dark, truth and falsehood, abstraction and representation, sculpture and non-sculpture, name and namelessness...) are products of humanity’s poor imagination. The world itself and everything that belongs to it derive from a primal emptiness or void and have returned back to this state. The title Being Nameless intimates Na’s own way of agreement with or respect for the world’s reasoning. Even though we submit to this line of analysis, our dignity is not damaged; it is reinforced. He has constantly stated that ‘an artistic practice is to break down everything by setting up one thing.’ To break down the name of everything by naming it is ‘to disclose namelessness’ or ‘to disclose the world.’ This principle can be applied to religious awakening as part of a study on humans, pure science which seeks out metaphysical nature with physical clues, or philosophy that believes in a subtle, elusive connection between truth, goodness, and beauty.

This exhibition looks artistically mature with its emphasis on the underlying state of a tree rather than its symbolism. The artist seems to completely understand how to represent his keen spirit with modeling spontaneity. The considerate space of ARTspace3 newly opened in Tongui-dong after moving from Insa-dong has enhanced the completeness of this exhibition. As we put confidence in Na's sculpture aesthetically, philosophically, and poetically, we become delighted by his works. We are not brave enough to evaluate an artist's world, but we guess he is finally on his way.

This writing is somewhat rough and abrasive while it is intended to introduce the solo show of Na who puzzles out meaning of being nameless. It is an undeniable fact that his nameless sculptures and variations in space and thinking engendered by them are really beautiful to my soul which is not so pure.


무명(無名)

‘하나를 세워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예도(藝道)라는 생각’....... 이것이 나 라는 실체 없는 정신의 위치다. 무명(無名)을 세우는 사유의 시선에 현재를 조직한 관념의 무너짐이 부재할 리 없으며, 목적성 없이 스러지고 일어나는 경이(驚異)의 상태를 바라볼 이치(理致)의 마음이 없을 리 없다. 하나의 마음이 무너지고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것이 사유(思惟)의 힘이라면 근저를 향한 삶의 태도는 ‘순례의 힘’일 것이다.

현재를 무너뜨려 영원의 시간에 자신을 던지는 행위를 ‘순례’라 한다면 그 던짐의 순간에 생(生)의 전략적 시간은 무너지고 불인(不仁)한 물리적 시간에 동참 할 남루한 ‘순례의 몸과 시선’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사유와 노동이 이와 같지 않다면 그 곳엔 선험(先驗)의 직관으로부터 후험(後驗)의 경이(驚異)를 알아차리게 할 정신이 있을 수 없다.

늘상 하는 독백이지만 표면으로부터 근저까지 본질이 아닌 것이 없으며, 먼지로부터 무한까지 생(生)이 아닌 것이 없다. 무목적적으로 흩어진 것들의 시간을 응시하여 존재와 현상을 알아차리기 위해 나는 ‘무명(無名)’에 기댄다. 그래서 먼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지에 이르는 장구(長久)한 시간을 알아차리는 ‘시선의 힘’ 그것을 ‘무명(無名)’이라 부르고자 한다.

나는 무명(無名)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형상의 구조와 모습을 전략적 언어로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지시될 수 없는 지향(指向)을 직관하는 시(時)적 정서 앞에 사물처럼 보이는 수직, 수평적 구조 혹은 어두운 내부를 품은 사물의 위치와 상태를 제시하고자 한다.
쓰러짐과 썩어가는 시간은 전략적일 수 없다. 찰나의 시간을 응시하며 순간의 삶을 영원에 던지는 행위 그 선험의 직관이 현재의 경이를 알아차리게 하는 ‘시’적 힘이다.

언젠가 사막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공간에 홀로 서서 ‘시’ 라고 독백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전시를 이루는 공간에 대한 내 시선은 ‘공간은 시’ 라는 전제 위에 있으며, 현상하는 세계에 대해 ‘알 수 없다’라는 자기 고백에 이르게 된다.

자연을 보는 것 그 것은 언제나 총체적 직관으로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대상도 주체도 없는 동(同)과 화(和)의 시간이다. 굳이 자연과 예술에 대해 말하자면 ‘예술의 본질은 질문이 아닌 동화(同和)에 있고 자연(自然)의 이치(理致)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론(論)으로 밝힐 수 없는 선험(先驗)과 후험(後驗)의 경이(驚異) 앞에 나서는 성찰적 태도를 예도(藝道)로 여긴다.

잎이 피는 소리와
生이 지는 소리
온 적도 간 적도 없는 소리

나 점수


Being Nameless

‘My idea is that a way of art is to break down everything by setting up one thing.’ This is the location of my unsubstantial spirit. The notion of organizing the present may collapse under the thought that has one remain nameless. One is certainly dependent on his or her reasonable mind to recognize an amazing state in which something falls down and stands up aimlessly. We are able to perceive our minds that break down or come up with our ‘power of thinking’ while our attitude toward life can be forged by our ‘power of pilgrimage.’

If a pilgrimage can be defined as an act of flinging oneself onto the perpetuity of time by breaking down the present, the strategic time of life collapses at that moment. At this moment, there should be the body and eye of such a pilgrimage to take part in any physical time. Unless an artist’s thoughts and labor are not like this, there could be no spirit to recognize a posteriori wonder from a priori intuition.

As I always say to myself, everything from the surface to the bottom is fundamental while everything from dust to infinity pertains to life. I rely on being nameless in order to perceive the existence of scattered things and this phenomenon while gazing at their time. Thus, I'd like to refer to the power of the gaze to recognize a long period of time as being nameless.

I don't want to involve the structure and appearance of form couched in strategic idioms so as to account for the state of being nameless. I'd like to present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s that look like things or the location and state of things with dark insides through poetic emotions. The time of falling apart and rotting away cannot be strategic. A momentous life is brought to eternity, gazing at a momentary time. This action or a-priori intuition is ‘poetic’ power for us to realize a present wonder.

I remember I have cited some poem in some inexplicable space of a desert, standing alone. Since then, my eye has been based on the premise that ‘any space is a poem’ and I confess that I cannot know of any emerging world. Seeing nature is a process of perceiving it through a comprehensive intuition as well as the time of assimilation and harmony. In terms of nature and art, ‘the nature of art lies in assimilation and harmony while we are unable to realize the reason of nature.’ I consider any reflective attitude a form of art, going beyond any a priori and posteriori wonder.

The sound of blooming flowers

The sound of withering life

The sound that has never come and gone.

(Na, Jeom Soo)

Artist Infomation

나 점 수

1969生

2002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 졸.
1997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 졸.

개인전
2020 무명(無名),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18 무명(無名), 아트스페이스3, 서울
2016 표면의 깊이, 김종영 미술관, 서울
2016 식물적 사유, 아트비앤, 서울
2014 식물적 사유, 갤러리3, 서울
2011 식물적 사유, 예술의 전당, 서울
2010 표면의 깊이, 갤러리현대 16번지, 서울
2009 식물적 사유, 김종영 미술관, 서울
2008 Jeomsoo's Photo Studio, 대안공간 눈, 수원
2004 Cell in Temperature, SPACE CELL, 서울
2001 Temperature, 갤러리 보다,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MORE LESS, MUCH MORE, 여수 국제아트페스티벌, 여수
2019 SIMPLE 2019 : 집, 장욱진 미술관, 양주
2018 미언대의(微言大意), (2인전 : 나점수, 이건용), The Page 갤러리, 서울
2017 나무, 시간의 흔적, 63아트, 서울
나무와 만나다 – 전후 한국현대목조각의 흐름, 블루메 미술관, 헤이리
식물적 사유 (2인전 : 나점수, 임동승), nook 갤러리, 서울
2016 뉴 드로잉 프로젝트, 장욱진 미술관, 양주
2015 더 빅 제스쳐 : 회화와 조각으로부터, 아트비앤, 서울
2014 Metal Works Today, 김종영 미술관, 서울
2013 TOPOPHILIA: 공간의 시학 (2인전 : 나점수, 백순실), 백순실 미술관, 헤이리
2011 낯선 시간, 낯익은 공간, 인터알리아, 서울
2010 스페셜 에디션, 갤러리현대 16번지, 서울
조우(遭遇),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10 경기도의 힘, 경기도 미술관, 안산
2009 여행, 삶, 예술, 대안공간 눈, 수원
2007 케미컬 아트, 몽인 아트 스튜디오, 서울

수상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2016 올해의 작가, 김종영 미술관, 서울
2010 크라운-해태 아트밸리 레지던시, 장흥
2008-9 장흥 조각 아뜰리에
2003 송은 문화재단 지원상 수상
1998 중앙미술대전 특선
1997 뉴프론티어 대상

작품소장
장욱진 미술관
국립 현대 미술관
상암DMC

NA, JEOM SOO

b.1969

2002 M.F.A in Sculpture, Joongang University, Seoul
1997 B.F.A in Sculpture, Joongang University, Seoul

SOLO EXHIBITION
2020 Being Nameless, Art Space 3, Seoul
2018 Being Nameless, Art Space 3, Seoul
2016 The Depth of the Surface, Kim Chongyung Art Museum, Seoul
Thought Originated From Plants, artbn, Seoul
2014 Thought Originated From Plants, Gallery 3, Seoul
2011 Thought Originated From Plants, Seoul Art Center, Seoul
2010 The Depth of the Surface, Gallery Hyundai 16bungee, Seoul
2009 Thought Originated From Plants, Kim Chongyung Museum of Art, Seoul
2008 Jeomsoo's Photo Studio, Alternative-space Noon, Suwon
2004 Cell in Temperature, SPACE CELL, Seoul
2001 Temperature, Gallery Boda, Seoul

SELECTED GROUP EXHIBITION
2019 MORE LESS, MUCH MORE, Yeosu International Art Festival, Yeosu
SIMPLE 2019 : House, Yangju City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2018 Mieondaeui (微言大意), (Duo exhibition : Na Jeomsoo, Lee Kun-yong), The Page Gallery, Seoul
2017 WOOD, TRACE OF TIME, 63art, Seoul
Encountering Tree - The Flow of Korean Wooden Sculpture Since the 1960’s, BMOCA, Heyri
Thought Originated From Plants (Duo Exhibition : Na Jeomsoo, Lim Dongseung), nook Gallery, Seoul
2016 New Drowing Project, Yangju City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2015 THE BIG GESTURE : From painting and sculpture, artbn, Seoul
2014 Metal Works Today, Kim Chongyung Museum of Art, Seoul
2013 Topophilia: Poetics of place (Duo Exhibition : Na Jeomsoo, Baik Soonshil), BSSM MUSEUM, Heyri
2011 Unfamiliar Time, Familiar Space, Interalia, Seoul
2010 Special Edition, Gallery Hyundai 16bungee, Seoul
Close Encounter, Jeju Museum of Art, Jeju
Him of Gyeonggi-do,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2009 Travel, Life and Art, Alternative Space NOON, Suwon
2007 Chemical Art, Mong In Art Studio, Seoul

AWARDS AND RESIDENCY
2016 Artist of the Year, Kim Chongyung Museum of Art, Seoul
2010 CROWN-HAITAI ART VALLEY Residency, Jangheung
2008-9 Jangheung Sculpture Atelier, Jangheung
2003 Art Awardee of Songeun Art Award, Seoul
1998 Special Selection, Joongang Finearts Prize, Seoul
1997 Grand Prize, New Frontier, Seoul

SELECTED COLLECTIONS
Yangju City Chang Ucchin Museum of Art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NMCA)
Sangam DMC

Installation 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