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한 빛에 연결된 소리에 뒤덮이는 감각
“What is the purpose of writing music? One is, of course, not dealing with purposes but dealing with sounds. Or the answer must take the form of a paradox: a purposeful purposelessness or a purposeless play. This play, however, is an affirmation of life—not an attempt to bring order out of chaos nor to suggest improvements in creation, but simply a way of waking up to the very life we’re living, which is so excellent once one gets one’s mind and one’s desires out of its way and lets it act of its own accord.”
“음악을 작곡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목적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소리를 다루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목적을 지닌 무목적, 혹은 무목적인 놀이 같은 역설의 형태로 대답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놀이는 삶에 대한 긍정이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도 아니고, 창작적 개선을 위한 제안도 아니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 자체를 깨닫게 해주는 방식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과 욕망을 거두고, 삶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내버려둘 수만 있다면, 삶은 정말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
― John Cage, Silence: Lectures and Writings
존 케이지의 〈Radio Music〉(1956)은 음악을 ‘조율된 질서’로 보는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는 작품이다. 연주자는 다수의 라디오 수신기를 조작하며 사전에 지시된 시간과 주파수에 맞춰 채널을 바꿀 뿐, 어떤 소리가 나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라디오는 단지 정보 전달의 매체가 아니라, 우연성과 외부 현실을 수용하는 열린 악기로 재정의된다. 이처럼 케이지는 청취의 권위를 작곡가에게서 떼어내고, 소리의 결정권을 세계 그 자체에 맡긴다. 음악은 더 이상 구성된 작품이 아니라, 발생하는 사건이 된다. 그의 말대로 음악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자각하게 만드는 놀이”에 가깝다.2) 〈Radio Music〉은 바로 그 자각의 훈련이다. 수신기의 불완전성, 주파수의 교란, 예측할 수 없는 송출 내용은 모두 케이지가 말한 ‘목적 없는 목적성’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이는 청자의 의식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경험으로 완성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듣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NULL(김윤하, 김혜원, 남민오/MinOhrichar)은 이러한 듣기에 관한 문제의식을 화이트 큐브 갤러리 내부로 소환하며 퍼포먼스 《유리, 극, 영토》를 연다. 서울 아트스페이스3에서 NULL에 의해 편곡되어 다시 실연된 케이지의 〈Radio Music〉은 도시의 바깥소리를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지하 갤러리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층고가 높은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 공간에서 외부의 빛과 소리가 유입되고 라디오 통신이 비교적 원활한 지점인 유리 중정 앞에서 퍼포먼스는 시작된다. 김윤하와 김혜원이 라디오의 수신기를 조작하며 그 순간의 외부 세계를 청취하고, 실시간으로 포착된 소리는 남민오(MinOhrichar)가 제작한 모듈러 시스템을 통해 편곡된다. 이 과정에서 세상의 소리는 물리적으로 지하로 끌려 들어오고, 단절된 화이트 큐브 공간 안에서 다시 울린다. NULL은 케이지가 제시한 ‘듣기’의 개념을 기술적 매개와 장소성을 통해 동시대적으로 확장하며, 라디오와 모듈러 시스템이라는 매체를 경유해 갤러리 내부에서 바깥 세계를 감각하는 하나의 열린 틀로 전환시킨다. 동시에 이는 닫힌 공간 안으로 세계의 파편을 호출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영원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일시적 점유체3) 《유리, 극, 영토》의 도입으로 작동한다.
〈Radio Music〉에 이어 NULL은 〈유리, 극, 영토〉(2025)을 통해 유리 파편이라는 새로운 청취의 매개를 끌어온다. 퍼포먼스에는 기증받은 투명하고 다양한 표면의 유리 조각들이 단순한 물리적 재료가 아니라 타인의 기억과 서사의 파편으로 참여한다. NULL은 사전에 ‘소중한 것을 깨뜨려 무엇을 지켰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유리 기증자를 모집했다. 기증자들의 유리와 다양한 응답은 ‘유리 파편 아카이브’라는 하나의 장소로 모였다. 유리 아카이브는 퍼포먼스의 출발점이자, 관객이 공동 작업자로 참여하게 만드는 제공된 영토로 드러난다. 퍼포먼스에서 마주하는 또다른 영토는 화이트큐브의 벽에서 떨어진 중앙 공간에 각자의 일정한 거리와 그 영역을 그리는 세 명의 퍼포머가 자리한 영토이다. 그들의 뒤에는 가로 약 10m에 달하는 프로젝션이 투사되며, 관객들을 이를 마주하며 갤러리 공간을 함께 채운다.
본 퍼포먼스에서 시각의 요소가 이처럼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은 듣는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 세 명의 퍼포머가 유리를 감식하고, 정리하며, 재해석하는, 즉 유리를 프로세싱하는 각자의 다른 ‘청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혜원은 현미경과 아이패드를 활용해 유리를 관찰하며 표면의 균열과 출처 기록을 확인하는 ‘감식의 청취’를 수행하고, 김윤하는 센서가 달린 빗자루를 이용해 유리 파편을 반복적으로 쓸고 흩트리며 신체의 리듬과 감각으로 파편을 어루만지는 ‘촉각의 청취’로 시도한다. 이 반복적 행위는 일종의 청각적-물질적 스코어가 되어 남민오의 사운드 시스템과 연결된다. 남민오가 받은 데이터는 모듈러 시스템으로 조합되어 실시간으로 퍼포먼스의 ‘청각적 층’을 구성한다.
NULL의 유리 파편의 수집 행위는 단순한 오브제의 축적이 아닌 퍼포머와 관객의 경계를 넘은 모두의 ‘무심히 열려 있는 듣기’4) 의 상태로 이끄는 청취 행위로 확장된다. 케이지가 말한 이 듣기 상태는 우연한 소리, 비음악적인 요소,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감각의 개방을 뜻한다. 빛이 투영되어 산란하는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청취가 전하는 것은 무엇일까. ‘듣기’를 단순히 음향을 수용하는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깨진 유리 파편의 표면에서 기억을 읽어내고, 신체로 감각하고, 다시 사운드로 재해석하는 삼중의 과정으로 확장한다. 케이지가 우연성과 비음악적 요소를 통해 청취의 민주화를 실험했다면, NULL은 이를 동시대의 기술, 장소특정성, 물질성을 통해 새로운 실현을 시도한다. 관객이 일정한 거리에서 이 상황을 관찰하지만 그 역시 청취의 조건이 되며, 관객의 존재는 퍼포먼스 공간의 여백에서 가감되는 추가적 변수 데이터가 된다. 이처럼 《유리, 극, 영토》는 기술적·정서적·물리적 매개를 통해 사물, 소리, 신체가 서로를 듣고 조율하는 과정을 펼쳐 보이며, 청취의 정치성과 감각의 공동성을 미세하게 조율하는 무대가 된다.
‘듣기’란 무엇일까. NULL의 퍼포먼스는 사운드를 통해 어떤 감정을 유도하거나 이야기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벗어나, 사운드 자체가 사건이 되고 놀이가 되는 지점을 탐색한다. 이 놀이에는 완결도 없고 정답도 없다. 단지 들리는 것을 듣고, 그 안에 머무르는 감각의 상태가 있을 뿐이다. 이는 존 케이지가 말한 ‘삶을 자각하게 만드는 놀이’와도 겹쳐진다.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소리들을 무심히 지나치곤 한다. 그 무심함 속에서 들릴 듯 말 듯한 파편들을 포착하게 하고, 그 안에서 한 조각의 기억, 파편적인 감각,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나게 하는 동시대 미술 안팎에서 발생하는 삶, 수많은 새로운 사운드 실험들을 기대한다. 무목적한 관찰로 세상으로부터 끌어들인 소리를 30분 남짓 서서 귀 기울이는 무목적한 그날의 순간이 즐거웠다. 산란한 빛에 연결된 소리에 뒤덮이는 감각을 오래간 기억하고 싶다. 한편, 퍼포먼스를 마주하며 세 명의 퍼포머 각각을 ‘심장 달린 뇌’, ‘눈 달린 손’, ‘입이 된 귀’로 상상했는데 퍼포먼스 종료 후 기록 사진을 보며 그를 마주한 본인을 포함한 관객들이 이를 흡수하는 ‘융털’ 처럼 느껴졌다. 소리, 기억, 사물, 사람 사이를 유영하며 살아가는 공동의 존재로서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 것이며 무엇을 듣고자 할 것인가.
1) John Cage. Silence: Lectures and Writings. Wesleyan University Press, 1961, p. 12.
2) Ibid., 12.
3) 퍼포먼스 《유리, 극, 영토》는 서울의 아트스페이스3 갤러리에서 2025년 2월 15일 (토), 2월 22일 (토) 오후 5시 (각 30분 가량) 총 2회 진행되었다.
4) Pritchett, James. The Music of John C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김희주, 평론 「산란한 빛에 연결된 소리에 뒤덮이는 감각」, NULL 퍼포먼스 《유리, 극, 영토》,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