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의 만남과 관계 맺음으로 ‘나'는 타자에게 흘러 들어가 자리 잡는다. 그렇게 서로 가늠할 수 없는 영향을 주고받는다. 타자는 내 안을 향해, 나는 밖을 향해, 나와 타자의 만남은 그런 가상의 교환을 만들어낸다. 결정할 수 없고, 예측하거나 기대할 수 없고, 학습할 수 없으며, 언어와 개념에 기대어 어렴풋이 손에 잡을 수 있는 것. 이러한 실체 없는 교환은 나와 타자의 세계를 변화하게 하는 흔적을 남긴다. 관계 맺기는 몸의 안과 밖을 향하는 실체 없는 흔적의 교환이다. 우리와 우리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진 채 몸 바깥의 타자가 되어 살아간다.
나는 내 몸으로 존재하면서도 타자의 흔적이 되어 존재한다. 망각에 의해 내 안의 타자와 타자 안의 나는 편집되고, 우리는 동떨어진 조각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떨어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는 존재로, 나로 가득하면서도 안과 밖으로 흐르는 열린 자리로 존재하며 서로에게 예측할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킨다.
이 작업은 나와 바깥의 타자가 관계를 맺는 순간 일어나는 흔적의 교환, 그 생동하는 파동이 뻗어가는 것을 표현한다. 무수한 흔적에 의해 변화하고 새 살이 돋는 관계의 모습을 담는다. 흔적은 서로의 존재를 공유하는 하나의 사건이자, 무수히 불어나고 전이될 존재의 가능성이다.
두 사람은 통화를 하고 있다. 각자의 소음이 수화기 너머로 흘러 들어온다. 하나는 타인에게 영향받지 않기 위한 계획을 말하고, 하나는 그 계획을 몸으로 실행한다. 하나는 가만히 서서 요동치는 많은 자신을 붙들고자 하지만, 결국 예측하지 못한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기 전, 계단 옆에 자리하는 <맺기>에서 관객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이야기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첫 공간 <움직이는 것들>에서 통화하는 두 인물의 모습과 그 내용은 영상과 각각의 사운드로 보여진다. 명확히 다른 움직임과 시야로, 두 인물은 같은 대화지만 다른 형태로 흘러 들어오는 서로의 영향을 마주한다.
두 번째 공간, 관객은 통화 이후 움직이기 시작한 인물의 상황에 돌입한다. <덤벙-물결치는 것들>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인물이 마주하는 파동의 사건들을 목격한다. 전시의 끝에서는 <덤벙-연결되는 것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시 공간을 반영하는 흔적을 만나게 된다. 흔적의 파동이 전시장에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이 파동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글: 굴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