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매듭으로 연결된 존재*
이지언 (독립 기획자)
1.
«덤벙»은 ‘굴다리'라는 팀의 첫 전시로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미디어 전시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읽을 수 있다.
1) 프롤로그 : <맺기>라는 작업으로 전시장 입구에서 보이는 영상
2) 내러티브: <움직이는 것들-모두>, <움직이는 것들-파동> 전시장 내부를 크게 메우는 영상
3) 인터랙션: <덤벙-물결치는 것들>, <덤벙-연결되는 것들>, <윙-윙-윙> 모션 인식 기반의 실시간 인터랙티브 미디어
1) 프롤로그는 앞으로 전개될 내러티브의 표지 격으로 전반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2) 내러티브에서는 세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전시의 주된 주제인 ‘나-타인의 관계’로 돌입한다. 인물 〇와 ☐는 통화 중이다. 〇는 길을 걷고 있었고, ☐는 방 안에 있었다. 길을 걷는 중 특이한 걸음걸이의 △를 만나며 그의 걸음걸이를 체득하게 된다. 체득의 과정은 말투가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의도가 없었으며 유래없이 갑작스러웠다. 〇는 이를 ‘재미'있다고 여겼다. △의 일부를 닮은 스스로가 새로웠다. ☐는 〇를 이해하지 못했다. ☐는 제3의 영향이 싫었다. 그만의 걸음걸이를 만들고 싶었다. 통화가 끝나고 ☐는 밖으로 향한다. 3) 인터랙션은 밖으로 나간 ☐이 걷는 거리의 풍경을 보여준다. 하나의 벽체를 기준으로 두 작업이 마주한다. 세수를 하듯 카메라에 얼굴을 인식하면 길을 걷는 듯한 거리뷰가 펼쳐진다. 거리뷰를 보는 이들은 벽체 너머로 실시간 카메라와 모션인식 기능을 통해 변하는 전시장의 풍경으로 이어지며 혼재된 공간으로 이동한다. 전시 내러티브의 핵심인 ‘나-타자의 관계’와 전시-관람객의 관계로 연동되며 새로운 해석을 도모한다.
2.
그들은 보통의 매듭으로 연결된 존재로서, 자신들에게 응답하는 자들을 “우리"라고 하는 예측 불가능한 종류kind로 한데 모으는, 의미-만들기의 형상들이기도 하다.
도나 해러웨이는 종과 종이 만날 때에서 위와 같이 썼다. 이 문장을 빌려 전시를 해석할 수 있겠다. «덤벙»은 ‘독특한 걸음걸이가 복수의 인물들의 응답을 이끌어냈다'는 대전제로 구성되었다. 해러웨이의 문장에서 응답하는 자들 즉, 〇와 ☐는 완벽히 일치하지 않으나 ‘종류kind’로 그룹핑 되어 매듭으로 연결된다. 작업에서 〇와 ☐, 그리고 △는 결국 어떠한 방향으로든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기서 ‘영향’은 ‘바꾸기'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며 ‘검색과 비웃음, 기억하기, 무시하기 등 비가시적인 형태를 포괄한다. 전제는 인물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라고 일컬어지는 무수한 종에게도 적용되며, 얽히고설켜 개별의 오리지날리티, 기원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형성되었다.
인터랙션 작업 <덤벙-물결치는 것들>, <덤벙-연결되는 것들>을 건너며 작품 속의 배경과 전시장이 흐려지는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브루노 라투르의 ANT(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경계를 무력화하는 작업은 위계를 없애는 작업과 통해 있다 .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전시장과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거리’라는 배경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는 공간 사이의 위계를 무너뜨리며 세계관의 통합을 설정한다.
걸음걸이와 같은 ‘행위'에 집중해 보자. ‘행위’를 보기 위해서 ‘행위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생은 ‘행위자'이다. 브루노의 정신은 존재하는 행위자 간의 검열을 삭제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균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시와 닿아있다. 작품과 같이 영향을 미치는 사이는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인터랙션에서는 결국 작품과 해당 섹션에 위치한 ‘행위자'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일시적이고 잠재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잠재적인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
3.
첫 전시를 가진 팀 굴다리는 박해우, 이십이의 기획 및 연출로 진행되었다. 제작과 실현은 많은 이들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졌다. 전시를 만든 형식 또한 영향과 관계 맺기로 읽을 수 있다. 연출이 제작에 미치는 영향과 제작이 작품에 미치는 관계는 전시의 본질이 된다.
*도나 해러웨이의 「종과 종이 만날때」 p.14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