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yi≫는 'fey'와 'fei'의 합성어이다. 영단어 ‘fey’는 ‘약간 특이한, 비현실적인’이라는 뜻이며, [fei]로 발음되는 중국어 飞는 ‘날다' 라는 뜻을 갖는다. ‘날아가는 것’은 자유로운, 열린 주체, 연속적인 움직임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를 품고 있다. [fei]는 중국어의 4가지 성조 중 평성(1성)으로 숨을 깊게 내뱉어야 하는 긴 단어이다. 제목은 이처럼 여러 차례의 이유와 긴 과정을 갖는다. 작가들의 작품 또한 ‘물질’을 넘어 ‘과정’, ‘의도', ’맥락' 등을 여러 번 통과하며 복수적 의미를 갖길 바란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전시는 단일한 방향을 벗어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태의 작품, 위도 아래도 없는 그리기, 유동적 이동을 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고, ≪fe,yi≫도 잠시 여기 머물 뿐이다. 그래서 전시가 구성되고 작품을 담아내는 과정을 되돌아보고 주의 깊게 살폈다. ≪fe,yi≫는 물리적 결과를 넘어 전시를 위해 존재했던 과정을 조금씩 쪼개어 드러내고자 했다. 예를 들어, 작업 과정을 전시 공간에 재현해 보거나, 전시 구상 스케치를 포스터에 숨겨 놓거나, 지나간 대화를 적어 보는 것이다. 해체되어 나타나는 과정의 시간 조각들로 전시장 풍경이 조금은 다층적이고 연속적으로 보여지길 의도했다. 이때 무질서함이 아닌 부드럽고 완곡하게 해체되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정리된 하나의 작품으로 발화되지만, 복수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간단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려울 수 있다. 애초에 하나의 단어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길 바랐다.
독일 극작가인 고홀트 에프라임 레싱 Gotthold Ephraim Lessing은 ‘시간에서의 연속성은 시인의 역할이고, 공간에서의 공존은 미술가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는 작품의 여러 의미를 공간에 새기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 단 하나의 갈래를 없애고자 하는 의지와 전시를 단순명료하게 해석하지 않기 위해서 상상하고, 질문하고, 그려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시각적 메모와 대화의 파편을 없애지 않고 여기에 펼쳐 놨다. 하나보다 무한히 많은 곳으로 바라보길 바라며. 그렇다면, 전시 제목을 약간 이상한 날기의 동작 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