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승: TRANS

Lim Donseung: TRANS

ARTIST
임동승
Dongseung Lim
TITLE
TRANS
DATE
2020. 4. 2 (Thu) - 5. 2 (Sat)
ARTIST TALK
2020. 4. 18 (Sat) 4pm
렘브란트, 오사카, 디즈니

렘브란트의 <삼손의 실명(失明)>(The Blinding of Samson, 1636)을 보고,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지금 살았더라면 그림보다는 영화를 만들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극적인 사건을 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의 동작과 배치에 압축한 ‘연출력’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영화적인 면모, 강점이 회화의 영역에서 비본질적이고 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진 시기가 있었다. 그런 주장에 동조한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겠지만, 둘다 그런 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요컨대, 회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회화의 유산으로부터 배제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데 ‘깊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논의들이 전부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 그런 주제에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무엇을 그려야 하고 무엇을 그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누군가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권력의 자리에 항상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오사카 시립미술관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고 감탄한 일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아는 ‘현대’의 ‘대표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빠짐없이, 균일하게 정렬되어 있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미술관들은, 내가 가 본 한에서 비교하자면, 보다 논쟁적으로 편향적이랄까, 혹은 그렇게 균형에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 혹은 그런 균형에 대한 의식 자체가 별로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나의 작업 이야기로 넘어오자면, 나는 사전 계획을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나가기보다는, 실마리가 되는 모티프가 있으면 거기에 연관되는 것들과 관계하면서 다음 과정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쪽이다. 이런 과정을 진행하다보면, 내가 기대고 있는 ‘회화의 유산’들에 대해 의식하게 된다. 거기엔 앞서 말한 것처럼 한때 배제되었던 전통도 물론 포함되는데, 그런 ‘전통들’ 중에 어떤 것이 우선시된다거나, 그것들 사이에 위계적인 질서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상상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상상의 백화점’같고, 더 비근한 예를 들자면 구글의 이미지 검색 화면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오사카 시립 미술관이, 그 무논쟁적인 균질성이 떠오르는 것이다.

내가 나의 그림에 대해 꼭 잘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작업에 대한 나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그림들은 무언가를 드러낸다.
그리고 나는 욕망만큼이나 필연적으로 은폐될 수 밖에 없는 ‘권력의 자리’에 대해 상상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구원이나 복음의 현실태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자꾸만 디즈니가 생각난다.

2020.2.22.
임동승

임동승 회화론 : 틀에 박히고 억눌린 것들에 화답하기


임동승은 대체로 2010년대 중반까지 회화적 완성과 관련된 방법적 확장에 천착했다. 그러다가 2016년에서 2017년을 지나면서, 그 자신이 ‘수행과정(performative process)의 탐구’로 표현하는, 일련의 새로운 회화 노선의 경작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 회화론은 방법이나 기술로서의 회화를 넘어서는 것에서 시작해 회화적 장치를 문학적으로 운용하는, 또는 문학적 요소를 회화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으로까지 확장된다. 후자 역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일련의 것들은 임동승의 사유적 소양에서 비롯되는, 더욱 진전된 참신하며 음미할만한 미적 성과들을 내어놓는다.
<수난극.A Passion Play>, <공룡과 의사당.Dinosaur and Capitol>, <전원의 합주 혹은 폭풍우.Pastoral Concert or The Tempest>, <죽음과 소녀들.Death and Girls> 같은 작품이 그것으로, 모두 2019년에 그린 신작들이다. 이 호명되고 문학적으로 조련된 이미지들의 출처는 어린 시절의 환상, 매스미디어, 무의식, 꿈으로 이어지는 너른 스팩드럼을 이룬다. 호명된 이미지들은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들에서 행해진 자기수행적 회화의 여정에서 자주 임의적으로 수집되는 의미가 모호한 기록물들이다. <죽음과 소녀들.Death and Girls>이나 <수난극.A Passion Play>처럼 대체로 ’죽음과 관능에 대한 강박‘의 관념과 관련된 것이고, 그것들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은 예컨대 <공룡과 의사당.Dinosaur and Capitol>(2019)이나 <돌핀몬스터와 가면라이더.Dolphin Monster and Kamen Rider>(2017)처럼 대체로
헛헛한 아이러니, 유머의 기조, 희화화된 은유를 동반한다. 그것들이 내용이 명료한 메시지 구성이나 첨예한 해석에의 초대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임동승의 회화가 스토리를 구성하고 전개하는 방법은 통상적 의미의 줄거리나 연출에 대한 혐의에 기반을 두면서, 명료한 전개나 식상한 결말과 결별하면서 기본적으로 수수께끼나 완성되지 않을 퍼즐방식을 선호한다.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들에서 행해진 수행적 회화 여정에서 수집된, 모호성이 더욱 증폭된 기록물들을 통해, 메시지 구성이나 해석으로의 조급한 직진을 만류하고, 각각의 사건과 상황들의 뒤틀린 기입에서 기인하는 긴장어린 대기상태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사건들의 세부는 생략되고, 그것들의 관계설정은 추상적이다. 모호해서 명료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개별적인 요소들은 사실적이지만, 그것들의 상호배치, 관계설정은 사실주의를 비켜나간다. 분명 무언가가 발화되지만, 그 내용은 수용자의 인식에 포섭되지 않는다. 결국 소통은 덜 종결된 채 미지의 어떤 지점을 배회한다. 부단히 시작될 뿐,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인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성 자체가 치명적으로 손상된 상태라는 존 캘빈(John Calvin)까진 아니더라도, 세속의 보편 철학의 기반으로서 이성에 대한 신뢰, 곧 이성이 파악하는 명료한 것들로 행복한 삶을 건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임동승이 근래 자신의 근래의 작업을 ‘완성’이라는 틀에 박힌 관념을 넘어서는 것으로 요약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 의미는 그가 언급했듯 ‘방법과 테크닉’ 측면에서의 완성, 즉 지극히 이성적으로 설계되는 ‘방법적으로 잘 구현된 회화’에 더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작가는 그런 회화가 더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방법이 궁극이 되는 자체의 공허, 테크닉으로서 회화의 덧없음에 더는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방법적 회화의 시도, 또는 스타일의 기반으로서 고유한 테크닉의 개발은 회화가로선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특히 형식주의 회화론을 잘못 소화한 이들에겐 치명적인 덫이거나 너무 달달해 빠져나가기 어려운 유혹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생각으로 임동승은 “이제껏 피하거나 억눌러왔던 회화의 방법들에 기회”를 허용하는 노정, 즉 완성이나 결과에 대한 우려, 구성의 강박을 내려넣고 그저 마음이나 손가는 대로 따르기를 시도해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킥.Kick>(2017)이나 <녹색의 커어브.Green Curve>(2017) 같은 작품이 이러한 맥락에 보다 더 부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접근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이를테면 선과 형과 색의 비관례적 운용을 통해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의구심이나 종종 시니컬한 코멘트를 내포하는 사물이나 대상의 윤곽을 흐릿하게 하거나 아예 없애는 등의 방법이 시도되었다. 의례히 생각 없이 따랐던, 미학적 경계와 회화적 범주들에 대한 의구심, 흐릿하게 하기, 모호성의 증가는 임동승의 회화에서 하나의 미적 저변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임동승 회화론의 미덕은 이 출처가 다양한 각각의 것들이 시각적으로 번역되고, 하나의 평면에 기입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이 과정은 각각의 사건과 상황들이 “육체의 무게를 가진 무의식”, 또는 “질료적인 꿈” 같이, 그 안에 모순과 상치를 내포하는 것들로 되는 과정으로, 이를 거쳐 이야기의 사실성의 농도, 곧 구상과 추상, 명료와 모호 사이의 긴장의 수위가 조율된다. 여기서 관례화된 형식주의 규범들, 모던 페인팅의 얀센주의적 강령들은 크게 무의미하다. 연대기적 서열, 반듯한 플롯을 위한 예우 따윈 없다. 사실과 허구, 다큐멘트와 픽션, 심지어 3류나 B급으로 분류되는 것들에조차 조금도 배타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무분별하고 지각없는 포스트모던미학적 관용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예방하는 어떤 회화적 긴강감이 작동한다. 붓 터치가 사실주의적 구현과 단편적인 단위로의 분절 사이를 오가면서 형성되는 균형에서 오는 긴장감이다. 인물과 사물들의 정체성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그리고 대체로 스스로 흐릿해지거나 픽셀화되면서 회화적 긴장을 보다 팽팽한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임동승은 환상과 꿈, 일상과 미디어의 여정에서 가져온 미학적 요인들로 된 저글링을 즐긴다. 관람자(觀覽者)에게도 매우 즐거운 게임이다. 조르쥬 쇠라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이에서, 에드워드 호퍼적 실존주의 기질에 표현주의나 나비파의 색채 취향을 조미하면서, 그리고 베트남전이나 수난극에 포스트모던적 필터를 겹겹이 끼우기를 통해 드러나기 보다는 은폐되는 상황, 알고 싶지 않은 부조리, 불투명한 시각적 레이어, 진도가 나가지 않는 독해를 구성한다. 이 회화론은 사색의 결과를 정리해놓은 보고서로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 회화는 사색의 과정 한 가운데를 여전히 지나는 중이다. 결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적어도 아직은 그것을 논할 시점이 아니다. 이 회화는 출판이 완료된 단행본의 지면이 아니라, 지금 쓰여지고 수정되는 원고지와도 같다. 형식이 아니라 형식화하는 과정을 문제삼는 회화, 곧 자기수행의 탐구로서의 회화인 것이다. 관람자(觀覽者)의 일은 그 결과치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그 결을 따라 동행하는 것이다.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서울대학교 교수)

Artist Infomation

임동승 (b.1976)

2009 미술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2006 베를린 종합예술대학(UdK) 교환학생
2004 미술학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2001 문학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개인전
2020 <트랜스> 아트 스페이스 3, 서울
2016 <유혹맞대결/생각하는 사람들> 갤러리 3, 서울
2015 <세바스찬씨의 열반> 갤러리 신교, 서울
2013 <친숙한 것들에 관하여> 리씨 갤러리, 서울
2009 <긍정의 그림들>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양구

그룹전
2019 <회상/비젼 - 한일현대미술교류전>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도스 갤러리, 서울
     <임동승/나점수 2인전: 아트 스페이스 3> 아트센트럴 2019, 홍콩
2018 Gallery Baesan, 서울
2017 Kiss Gallery, 서울
     <겸재와 함께 옛길을 걷다> 겸재정선미술관, 서울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포스트모던 리얼>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2016 <일한현대미술교류전 2016 -CONNECT-> JARFO 교토화랑, 교토, 일본
     <할아텍, 제비리를 만나다>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안평의 시대_두번째> 파머스가든 봄, 양평
2015 <겸재 정선과 양천팔경 재해석> 겸재정선미술관, 서울
     <목포타임 - 트라이앵글 프로젝트 2015> 목포대학교 창조관 도림갤러리 및 박물관, 목포
     <갤러리 소머리국밥 6주년 개관기념 특별전 - 양평의 재발견>,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2014 <아르스 악티바 2014_예술과 삶의 공동체> 강릉시립미술관, 강릉
     <풍경하다_Nowhere Land: 이자영, 임동승, 정상곤 3인전> 갤러리 3, 서울
     <아티스트, 그 예술적 영혼의 초상> 금보성 아트센터, 서울
2013 <갤러리 소머리국밥 기금 마련전>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2012 갤러리 자작나무, 서울
     갤러리 메쉬, 서울
     <피보다 아주 조금 무상한 아름다움>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2011 리씨갤러리, 서울
2010 <야생사고> 아트지오 갤러리, 서울
     <거기, 철암 그리고 태백 Halartec 그림그리기 100회 기념전> 구와우 고원자생 식물원, 태백
     <잇다 2010 작가맵핑프로젝트> 박수근미술관, 양구
2009 <인사미술제: 한국의 팝아트> 백송화랑, 서울
     갤러리 소머리국밥, 양평
     <트라이앵글 프로젝트 2009> 박수근미술관, 양구
2007 주독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 갤러리, Berlin, Germany
     Galerie im Volkspark, Halle, Germany
2005 <더 스토리텔링> 성신여자대학교 미술관, 서울
     <공간의 생산> 제6회 대학미술협의회 기획전, 갤러리175, 서울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2013 미술은행)

Installation View

Artist Talk